정순영 수리과학연구소장은 지난 1월30일 취임했다. 산업수학과 의료수학을 수리연의 대표 브랜드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
최근에는 수학에서 진화한 산업수학이 등장했다. 산업수학은 낯선 접근이지만 교통, 일자리 창출, 녹조, 도시정책, 북극 빙하, 의료처럼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들과 긴밀하게 연결된 학문이다.
산업수학은 노조와의 갈등을 봉합하고 새로운 비상을 꿈꾸고 있는 국가수리과학연구소의 히든카드이기도 하다. 수학으로 세상에 기여하겠다는 설립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50여 명의 연구원들은 수학과 세상을 잇는 연구에 매진 중이다.
그러나 수리연은 꽤 오랫동안 침체기였다. 경영진과 노조와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언론의 집중적인 뭇매를 맞아야 했다.
지난 1월 정순영 소장이 취임했을 당시에도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정순영 소장은 수학자답게 차근차근 난제에 접근했다. 얼굴을 보며 소통했고, 지킬 수 있는 약속은 실천하며 노조와의 거리를 좁혀갔다. 그리고 취임 6개월 만에 노조와 신뢰관계를 구축하며 새로운 비전을 수립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폭염 속 어느 날, 정순영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을 만났다. <편집자 주>
-수리연은 산업수학 문제 해결 중심형 기관으로 방향을 설정했다. 산업수학을 쉽게 설명해준다면.
▲산업수학은 수학적 지식과 방법론을 활용해서 기업체, 연구소, 공공의 분야에서 수요자로부터 제기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틀어 말한다.
기존 수학의 활용형태가 출연연과의 융합연구에 그쳤다면, 산업수학은 산업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수학적 문제인 의료, 감염병, AI, 재난 등과 같은 국민의 관심사인 문제로 확대해 수리연이 국민과 국가에 기여 하는 형태로 진화했다.
궁극적으로 산업수학은 산업체나 도시개발에 직접적인 솔루션을 줄 수 있는 연구로 정의할 수 있다.
조금 더 쉽게 접근해보면 대전의 교통 정책이나 금강의 녹조 문제를 산업수학 측면에서 해결할 수 있다. 최근에는 출연연과 북극의 빙하가 흘러내리는 형태라든지, 지하철 전류 문제, 일자리 미스매치와 관련해 수학적인 면에서 살펴보고 있다.
-산업수학 어떤 형태로 서비스되는가.
▲산업수학의 가장 큰 수혜자는 벤처기업을 포함한 중소기업이다. 수리연을 찾아오는 수혜자는 대부분 판교 테크노밸리에 소재한 벤처기업이다.
수혜자가 문제를 의뢰하면 수학적으로 접근이 가능한지 우선적으로 전문가 토론을 연다.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연구테이블에 올려서 내부 인력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문제 해결 전문위원들과 문제를 풀어간다.
올해 처음 ‘산업수학 문제 해결 워크숍’이라는 이름으로 전문위원들과 수학자, 공학자 등 전문가들이 모여 2박 3일 동안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연말에도 한 차례 워크숍을 열어 밀도 있는 토론과 연구로 수학적인 솔루션을 도출할 예정이다.
산업수학은 국가적 프로젝트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산업계 전반의 문제를 다룬다. 외국에서는 연구비를 출자하는 방식이지만 우리나라는 무료다.
대부분 벤처나 중소기업의 의뢰가 많은데 대전은 벤처기업 중심의 테크노 밸리가 활성화되지 못했다. 가장 가까이 있지만, 수혜자는 사실상 없어 아쉬움이 크다.
정순영 소장은 수학자다. 수능 출제는 물론 중고등 교과서와 교육 목표 정립 등에 기여해 왔다. |
▲화학연, 표준연, 기초과학지원연 등 9개 출연연이 융합해 신종 바이러스 감염 대응 융합솔루션 개발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 과제에서 수리연의 역할은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예측모델 개발이다. 노벨물리학상 수상 분야인 중력파 연구에도 참여하고 있다. 우주에서 날아오는 수많은 파(wave) 중에 중력파는 굉장히 미약해서 검출과 분석이 어려운데, 수학적 이론으로 파 데이터 분석 연구를 맡고 있다.
또 지구 상의 많은 기후변화로 발생하는 재난, 재해 연구도 협업한다. 재난 예측 모델 개발을 지질연, 극지연, 기상청과 진행 중이다.
-수리연 청사 이전 문제는 어떻게 진행 중인가.
▲청사 이전은 수리연은 숙원이다. 하지만 거대 예산이 필요하고, 부지를 받아야 과정에서 설득이라는 과정이 필요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과거 몇몇 지자체에서 청사부지와 주거 편의 등 다양한 혜택으로 유치 제안을 받았으나 결정 과정에서 직원들과 공감대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서 중단된 사례가 있다.
2010년에 설계비로 20억을 받았다가 이전 문제가 지연되면서 반납한 안타까운 사례도 있다. 청사 이전과 설립 규모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과기정통부도 공감하고 있어 남은 건 시간 문제라고 본다.
IBS 본원 이전은 가장 선호도가 높은 희망사항이다. 다만 본원 내에 수리연을 위한 단독 청사를 지을 수 있는 부지가 여의치 않고, 수리연의 의지만으로 이전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현재는 청사이전만큼이나 산업수학으로 인한 고객 감동에 집중해야 할 시기다. 직원들과의 공감대 형성과 고객 감동이 동시에 이뤄지다 보면 청사 이전 문제도 해결되리라 본다.
-임기 7개월 차다. 남은 2년 6개월의 동안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나 사업이 있다면.
▲3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는 수리연의 안정화를 지속성 있게 유지하는 것이 최대 관건이다. 둘째는 산업수학의 모범 사례를 만들어 성과를 도출하고자 한다.
마지막 셋째는 수리연의 대표사업을 만들어 보고 싶다. 현재 구상 중인 것은 의료인데, 최근 용어를 만들어다. ‘의료수학’이라 부른다.
우리나라는 의료 빅데이터가 많다. 데이터로부터 질병의 효율적 진단과 질병의 지표를 개발할 수 있어 의료 수준의 향상은 물론 수학의 효용성을 극대화하는 프로젝트로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의료수학을 기반으로 최종적으로는 수리연 내에 ‘의료수학센터’를 만드는 것이다. 지원조직도 만들고 체계적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의료데이터를 가지고 시스템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아마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지난 6개월 동안 수리연 연구원들도 의료수학으로 분야를 바꾸고 있고 의사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병원이 아닌 수학이 주가 되는 연구소를 이끌어 가는 것으로 남은 임기 동안의 과제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은 앞으로 ‘수리연이 뭐하는 곳이냐?’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줄줄이 설명하기보다 ‘의료수학’을 하는 곳으로 브랜드를 정립하고자 한다. 대담=윤희진 경제과학부장·정리=이해미 기자
의료수학은 정순영 소장이 만든 신조어다. 의료빅데이터로 질병의 효율적 진단화 질병의 지표 개발에 앞장 서겠다고는 포부다. |
정순영 소장은?
▲1959년 2월21일 ▲서울대 수학교육학 학사·석사·박사 ▲서강대 수학과 교수 ▲서강대 자연과학대 학장 ▲대한수학회 부회장 ▲한국연구재단 수리과학단장 ▲덕성여대 수학과 조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