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대전 방문의 해를 맞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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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대전 방문의 해를 맞이하면서

이지호 이응노미술관장

  • 승인 2018-08-07 09:00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이지호 관장
이지호 이응노미술관장
칙칙한 세월의 냄새가 풍기는 파리 외각의 오래된 서민 아파트 건물, 이 거대한 주거지가 서서히 무너지고 동시에 화려한 불꽃이 마치 건물의 죽음을 아쉬워한 듯 하늘을 향해 높이 올라갔다 사라진다. 동물의 슬픈 울음소리를 닮은 청승맞은 장송곡이 화면의 배경음악으로 울려 퍼지면서 숙연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도시화로 인해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온다. 이 이야기는 조상때부터 살아왔던 원주민이 생활터전과 함께 사라진다는 그들의 기구한 운명을 소재로 한 '시프리안 가이야' 작가의 영상작품이다. 이 작품은 도시화로 인해 빗어지는 어두운 사회이야기를 원주민의 입장에서 예술적으로 풀어낸 젊은 작가의 절규이며, 동시에 거대한 도시의 생성과 소멸을 인간의 탄생과 죽음에 비유한 아름다운 서사시다. 전국토가 고유의 색채를 잃고 콘크리트 아파트촌으로 물들어가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새로운 신도시의 등장과 함께 과거의 번영을 뒤로한 채 쇠퇴해 가는 원도심의 공동화 현상으로 인해, 다행이 지금은 많은 나라들이 건설보다는 재생을 강조하는 도시재생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주어진 천혜의 자연환경 덕에 조금만 손을 봐도 명품도시로 부상할 수 있는 원도심은 드문 경우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원도심 재생프로젝트는 기존의 약점으로 평가받았던 것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시켜서 성공한 사례들이다. 퐁피두미술관이 위치한 레알지역은 파리 1번지로 파리 최고의 재래시장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슈퍼마켓 등 대형 백화점이 등장하면서 재래시장의 상권은 무너지고 주변은 점점 우범지역으로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 프랑스 정부는 도시재생프로젝트의 하나로 재래시장을 과감히 없애고 퐁피두센터라는 대규모 복합문화시설(영화관, 개방형 도서관, 국립현대미술관, 예술아카이브센터 등)을 이곳에 건립하게 된다. 현재 최고의 문화시설이 있는 이 지역은 국내외 사람들이 붐비는 세계적인 명소로 탈바꿈 했으며, 그 옆에 과거의 레알 재래시장을 연상케 하는 "마레상가" 지역이 활성화돼서 전통을 사랑하는 파리지앵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 중국 상해와 스페인 말라가 같은 몇몇 도시는 "퐁피두센터 분관"과 "루브르 박물관"을 유치해서 원도심의 공동화를 현상을 해결하려는 소식을 언론을 통해 듣고 있다.

우리나라도 원도심의 공동화 현상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각 도시마다 원도심의 역사성을 활용한 명품도시 만들기에 고심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자치단체들이 유명세 있는 국제행사와 국제기관을 지역에 유치하기 위하여 과도한 경쟁을 벌이다가 예산낭비와 정책실패로 이어진 사례가 많았다. 가시적인 시도가 지역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홍보 효과뿐 아니라 단기간에 도시를 변화시킬 수 있는 특효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실수일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명품도시를 계획한다면 지역의 고유한 역사와 지리적 특성 그리고 문화켄텐츠 등을 고려한 창의적 계획이 중장기차원에서 이루어져야 성공할 수 있다. 성공한 다른 도시의 사례를 단순히 모방한다면 처음에는 효과가 있는 듯해 보이나 일회성 행사에 그칠 수 있고,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은 이런 행사들은 시간이 가면서 실패로 돌아설 확률이 높다.

대전의 원도심을 명품으로 전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선 현재 살고 있는 주민들이 느끼는 생활의 편리함과 자유로움이 아주 중요하다. 그들이 편안함을 느낀다면 당연히 외부인들이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매일 교통난으로 출퇴근길이 힘들고, 산책할만한 녹지와 공원이 부족하여 주민들의 정서가 메마른다면 사람들이 모이기 어렵다. 또한 문화예술행사는 찾아보기 힘들고, 자동차 매연으로 공기는 탁하고, 저급한 교육시스템으로 점점 도시의 활기를 잃는다면 그 곳에 살던 사람들부터 하나씩 떠나게 될 것이다. 도시 재생은 격조와 품위를 지녀야할 가치에 관심을 두고 추진돼야 한다. 대전시가 명품도시를 만들려는 궁극적인 목적도 경제적 성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편안하고 풍요로운 환경을 만들어 시민의 삶의 질을 높여 주려는 것이다. 시민의 만족도가 높을수록 그 도시가 하려는 행사의 성공률도 함께 올라가기 때문이다. 성공한 도시의 경제적 효과만을 보고 자칫 표피적 성과를 얻기 위한 시도라면 오히려 명품도시 재생프로젝트는 실패할 우려가 크다.



그러면 도시의 편안함은 어디서 오는가를 생각해 보자. 이미 명품도시로 알려진 선진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녹색 공원을 자유롭게 산보하고 자전거도 탈 수 있으며, 전시회와 연극, 오페라. 음악회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늘 열리고 있어 향유할 수 있으며, 거리마다 차와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여유로운 공간과 광장문화가 발달해 있으며, 재래식 장터과 현대식 쇼핑몰이 공존하여 필요한 물건을 여유있게 거닐면서 살 수 있고,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공원에서 운동을 즐길 수 있다. 명품도시를 정리하면 첫 번째로 주거공간, 휴식공간, 산업공간 등 도시전체의 균형적 공간 구성이다. 두 번째는 문화유산과 편리한 현대문명의 조화로운 디자인, 세 번째는 풍부한 문화예술 컨텐츠 및 시설 확보이다.

21세기에는 도시의 규모와는 상관없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도시의 개성을 살린다면 세계의 중심도시, 즉 명품도시가 될 수 있다. 독일의 인구30만의 소도시 "뮌스터"는 지난 1977년부터 10년 주기로 "뮌스터조각프로젝트"를 개최하는데 작년 2017년은 5회째를 맞이하는 해였다. 도시전체가 야외 환경조각전시장이 되어 예술과 공공성의 관계를 사회학, 정치학 그리고 미학적 관점에서 연구하고, 그 결과를 전시와 세미나 등을 통해서 현대미술담론을 끌어내는 현장 역할을 했다. 이 행사를 보기위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찾아오는 관광객으로부터 벌어드리는 경제적 수익도 있지만, 그보다 국제미술의 흐름을 주도하는 행사로서의 세계적인 명성은 물리적으로 따질 수 없는 무한의 가치이다. 이 행사의 성공은 훌륭한 전시기획력에도 있지만, 더 중요한 요인은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 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편안함과 자유로움이다. 하루 종일 작품을 찾아 도시 전체를 돌아다녀도 지루하지 않고, 피곤하지 않다. 발밑의 돌 하나하나, 거리의 휴지통 하나하나, 도시의 구석구석에 모든 것이 사람중심의 도시를 만들려는 배려가 깔려있다.

대전이 명품도시로 거듭나려면 대규모의 새로운 시설이 세워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사람이 살 수 있는 사람중심의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달리고,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광장, 산보할 수 있는 녹지... 이런 기반 위에 문화적 시설이 만들어지고, 대전시에 걸맞는 대규모 예술행사가 이루어진다면 대전은 명실공히 세계적인 명품도시가 될 것이다. 대전은 21세기 과학과 문화예술의 창조적 콘텐츠를 갖고 있기에 성공의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내년 "2019 대전 방문의 해"를 위해 대전이 지닌 격조와 품위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지호 이응노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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