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미 기자 |
플랫폼을 향해 걸어가던 여자의 구두 소리, 자대 배치를 받은 국군 장병들의 긴장한 어깨, 꼬마 아이의 손을 꼭 쥔 할머니까지. 역은 각각의 종착역으로 이별을 실어 보내주는 그런 곳이었다.
집 앞 신탄진역이 다른 곳보다 작고 초라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당시 신탄진역은 건물이 하나뿐인 단층 역사였다. 매표소도, 대합실도 플랫폼도 서너 발이면 모두 닿을 정도로 작았는데, 기차가 들어오면 작은 역은 부서질 듯이 요동쳤다.
시대가 지났으니 신탄진역도 나름 발전을 이뤄냈다. 물론 KTX 고속 열차는 서지 않고, 대전역만큼의 규모는 아니지만 말이다.
신탄진역을 보고 자랐으니 대전역은 내게 매우 큰 신세계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대전역은 대전의 중심이라는 개념을 일깨워 준 곳이다.
그러나 요즘 대전역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애처로움과 안타까움이 뒤섞여 있다.
대전역은 유동인구가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역사다. 그러나 대전을 둘러싼 주변 동네인 소제동과 원동, 정동 일대는 1990년대 혹은 1980년 그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역세권이라는 개발 호재가 대전만 비켜간 듯 이들은 흑백사진처럼 그곳에 그렇게 남아 있다.
최근 대전역세권 개발이 화두다. 10년 동안 두 번이나 좌초되고 올해가 세 번째 도전이다. 대전시장은 3번, 코레일 사장은 무려 7명이나 교체될 만큼 긴 세월이 흘렀다.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상인들의 반대로, 고도제한 행정절차 등 갖가지 이유가 대전역세권 개발의 발목을 붙잡았던 셈이다.
서른 즈음이 되어 보니 역(驛)은 수많은 갈림길을 지닌 ‘출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전역세권 개발도 그렇다. 이제는 신발 끈을 조이고 출발선에 서야 할 때다. 정확한 종착지를 설정하고, 속도를 올려 출발해야 한다. 대전역세권 개발이 또다시 멈춰 설 땐 대전역의 가치는 물론, 대전이라는 도시의 생명력도 답보할 수 없을지 모른다.
대전역세권 개발 10년의 몸풀기는 너무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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