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광 이사장 |
덥다 더워. 더운데 마땅히 탓할 곳도 없다. 올겨울 새로 이사 올 때는 "전기 요금이 무서워 잘 켜지도 못하던 에어컨인데, 그까이꺼 이제는 에어컨 달지 말자"고 호기롭게 외쳤었다.
에어컨이 빵빵한 동네 커피숍에도 가고, 찬물도 끼얹고 마트에서 어슬렁거려도 보는데 이 더위는 도무지 끝날 줄을 모른다. 강아지도 힘들긴 마찬가지인가 보다. 안 보여 찾아보면 그나마 덜 달궈진 현관문 앞 타일 바닥에 대자로 뻗어 있다.
자존심 내려놓고 이제라도 에어컨을 설치해볼까 하고 살짝 알아보니 차례가 돌아오려면 이 여름이 끝날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인터넷에서 더위 나기 검색해 하나씩 실천하며 이겨내고 있다.
그런데 정말 올여름은 왜 이렇게 더운 걸까? 8월 1일 강원도 홍천의 수은주는 한반도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높은 41도를 기록했다. 티베트·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으로 뜨거워진 공기가 동풍을 따라 태백산맥을 넘으며 '푄현상'이 일어나 뜨거워지고 있단다.
그렇다 해도 유독 올해 폭염이 맹위를 떨치는 것은 역시 지구 온난화가 주범이다. 미국 국립해양대기국이 지난 1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온실가스 주요 원인인 이산화탄소 방출량이 지난해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구 표면의 이산화탄소 농도도 대기 관측 사상 가장 높았다.
문제는 온실효과가 점점 심화할 것이라는 데 있다. 권원태 기후변화학회 명예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수준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면 한반도에 40도가 넘는 폭염이 5월부터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 각국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기후변화협약의 구체적 이행방안을 담은 교토의정서에 1997년 어렵사리 합의했으나, 온실가스 배출 2위 국가인 미국이 비준을 거부해 실효를 거두지 못한 바 있다.
2015년 오바마 대통령이 새 기후체제인 '파리기후변화협정'체결을 주도하며 진전을 보이는 듯했으나, 2017년 6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동 협정 탈퇴를 발표하며 다시 동력을 잃은 상태다. 세계 최고 부자 나라인 미국이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나 몰라라 하는 국제 현실이다.
더구나 온실가스 배출 1위, 3위인 중국과 인도는 교토의정서 당시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돼 의무감축량이 부과되지 않았는데, 최근 이들의 온실가스 배출이 급격히 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이러한 책임에서 자유로울까? 2014년 기준 우리나라의 탄소배출량은 세계 7위다. 각국이 국제사회에 공표한 계획대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인다면 우리나라는 2030년에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세계 3위가 될 거라고 한다.
2017년 8월에 발표한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배출전망치(BAU)의 37%(국내분 32.5%)를 감축해야 한다. 감축에 실패한 부분은 국제적 약속에 따라 재정으로 부담해야 하는데, 산업 부분은 원가 상승으로 이어져 감축이 쉽지 않고 가정 부분도 전력 사용량이 계속 늘고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더위는 누구 탓일까 다시 생각해본다. '내 탓이요'라던 성철스님의 가르침이 생각난다. 나부터 전기 사용을 줄이지 못하는데, 나라가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없고, 세계는 더욱 그럴 게다.
따라서 전 세계 탄소 배출은 계속 늘어 지구 온도는 더욱 상승할 거고, 사람들은 에어컨을 더 켜야 하고, 이런 악순환의 고리는 지구에 사람이 사라질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자, 이제 나부터, 우리 회사부터 안 쓰는 컴퓨터를 끄고 에어컨 온도 설정을 1℃ 높이는 작은 실천을 해보자. 이산화탄소 배출이 줄어든 만큼 여름철 온도가 내려가고, 그래서 에어컨을 덜 켜게 되는 선순환이 일어나는 날까지.
/양성광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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