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교수 |
일본의 장기 불황은 민간 소비의 급격한 침체로 시작됐다. 민간 소비 증가율이 1980년대 3.6%였으나 1990년대에는 1.9%로 급감했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초중반에 연평균 4.3%였지만 2008년부터는 연평균 2.2%였고 작년 경우 해외 지출을 빼면 1.6%로 1990년대 일본보다도 낮다.
장기 불황을 부채질하는 주요 변수인 내수 위기에 영향을 주는 청년 실업률과 60세 이상 가구 가처분 소득도 1990년대 초 일본보다 훨씬 좋지 않다.
한국 통계청과 일본 총무성 자료에 의하면 1994년에 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당시 청년 실업률은 4.8%였으나 2017년에 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은 9.8%로 2배 가까이 높게 나왔다. 청년실업률은 지난 5월 10.5%로, 5월 기준 역대 최악을 기록했다.
60세 이상 가구 가처분 소득의 경우 일본이 1994년에 78%지만, 한국은 2017년 64%로 낮다. 이는 노인 인구는 증가하고 있지만, 상당수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고령층 소비가 전체 소비를 이끌고 있다. 일본 고령층 소비 성향은 1994년 76.5%에서 2017년에는 80.9%로 증가했다. 우리나라 고령층은 소득 수준이 일본보다 많이 낮고 현금 자산도 부족해 소비 여력이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한국 고령층은 자산이 부동산에 몰려있기 때문에 일본과 같은 부동산 버블 붕괴가 발생하면 치명적 타격이 될 수 있다.
1991년부터 2011년까지 지속된 일본의 장기불황의 근저에는 낮은 경제성장률이라는 변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수출입국(輸出立國)이라는 모토 아래 산업화를 이뤄낸 한국은 지난해 경제 성장률(3.1%)의 무려 3분의 2를 수출이 만들었고 수출의 3분의 2를 대기업이 담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대기업들의 투자가 급속히 위축되는 것으로 나타나 한국에서도 장기불황이 현실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기업들의 투자 없이 경제성장과 고용 확대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이 최근 검찰, 국세청, 공정위, 금감원, 경찰 등의 전방위적 압박으로 크게 위축돼 있다. 10대 그룹 중 주요 사정 감독기관의 조사나 수사에서 벗어나 있는 곳은 한 곳도 없다.
여권이 발의한 상법 개정안은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 선출, 다중대표 소송 등 대주주 지배력을 약화시켜 외국 투기 자본의 먹잇감이 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으나, 기업의 경영권 방어책은 외면하고 있다.
규제프리존법은 민주당 반대로 2년 가까이 국회에 계류 중이고, 서비스발전법은 19대 국회 때 4년간 계류하다 폐기되는 등 다가올 4차 산업 혁명 분야에선 각종 규제로 기업들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폴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으로 한국 경제가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수출 의존도가 다른 나라보다 높고 미국과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40%에 달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살아야 수출이 살고, 수출이 살아야 한국 경제가 산다. 이제 반(反)기업 정책 대신 4차 산업혁명시대의 핵심 산업과 차세대 먹거리 경쟁력을 향상할 국가 차원의 산업정책에 정부의 힘을 쏟아야 한다.
또한 노동개혁을 통한 노동시장 유연화와 법인세 인하 등 기업 지원책과 과감한 규제 혁신이 긴요하다. 이러한 정부의 혁신적 변화 없이는 가까이 와 있는 '잃어버린 20년'을 떨쳐버리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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