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RUPI사업단장 |
하지만 이 소중한 세계적인 보물이 아파하고 있다. 반구대암각화가 1971년 처음 세상에 알려진 이후 해마다 침수와 노출을 반복하며 잔인한 물고문을 받고 있다. 아직도 제대로 된 보존대책 마련은 고사하고 주무부처인 문화재청과 울산시는 여전히 핑퐁게임 중이다. 이 비운의 문화재는 국제적으로 더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선조의 생활상이 담겨있는 350점이 넘는 그림의 내용과 그림이 새겨진 시기 때문이다. 암각화가 만들어진 시기는 약 7000년 전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야말로 선사인의 자취가 오롯이 남아 있는 희귀한 선사시대 유적이다.
바위그림은 수천 년 전 반구대 주변에서 살아가던 선조들이 남긴 미술작품이다. 여기엔 그들의 삶과 꿈이 절절이 녹아 있다. 그 당시 살아남기 위해 사냥감이 더 많아지고 사냥활동도 더 성공적이기를 염원하는 마음이 엿보인다. 그림을 보면 사슴이나 멧돼지, 고래가 중요한 사냥감이었다. 처음에는 육지동물을 사냥하다가 바다에서 몸통이 훨씬 더 크고 이모저모 쓸모가 더 많은 고래를 만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곤 목숨을 잃지 않고 고래를 잡기 위해 튼튼한 배와 강한 작살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게 된다. 그림엔 배를 타고 고래들을 잡는 사냥 장면도 잘 묘사돼 있다. 또한 혹등고래, 향유고래, 귀신고래 등 유독 많은 종류의 고래가 정확히 그려져 있다. 반구대암각화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 유적이다.
최근 반구대암각화 주변에서 공룡 발자국 화석들이 발견됐다. 1억여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살던 공룡 발자국 화석이 100여개, 정체를 알 수 없는 네발 보행의 척추동물 발자국이 10여개 발견됐다. 이처럼 여러 방면으로 다양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이 바로 반구대암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구대암각화에 새겨있는 그림들이 점점 희미해져간다. 야외에 있는 문화재는 세월이 흐르면서 훼손되기 마련이지만 후손들은 이를 잘 보존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 안에는 선조들의 삶이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이다.
2008년 국보 제1호 숭례문이 노숙인의 방화로 전소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했다. 불덩이가 돼 무너져 내리는 남대문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는 국민이 적지 않았다. 늘 우리 곁에 있을 줄 알았던 남대문이 허망하게 불타 없어진다는 안타까움에 자책했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 남대문은 모든 이의 관심 속으로 되돌아왔다. 마찬가지로 7000년을 훌쩍 뛰어넘는 반구대암각화에게도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식수 확보와 문화재 보호라는 한심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반구대암각화가 하루빨리 물 밖으로 걸어 나오길 소망한다.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RUPI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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