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언제나 대결 양상에서 시작된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공통적 사실이다. 싸움은 자신의 몫을 챙기려는 부정적인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와 대조되는 아름다운 싸움도 있다. 지금부터는 내가 체험한 보고 들은 아름다운 싸움 몇 편을 소개헤 본다.
점심시간에 내 반 학생 셋이 싸우다 붙잡혀 와서 주의를 받고 있다. 우리 반 학생 3놈이 싸운 사유를 물어보았다. 힘센 김철수가 아침 자습 시간 맞춰 오느라 아침을 굶고 와서 색시 같은 양연웅의 도시락을 몰래 말없이 먹어치웠다. 철수가 연웅이 밥을 다 먹어 버렸기 때문에 연웅이는 점심을 굶게 되었다. 그런데도 철수는 사과 한 마디 없이 연웅이에게 트집을 잡아 짓궂게 괴롭힌 것이다. 몸이 약한 연웅이는 도시락밥을 빼앗기고도 힘이 딸려 싸움에서 철수한테 얻어맞게 되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강철식이 의분을 참지 못해 약자 연웅이를 도와 강자 김철수를 때려준 싸움이었다. 사유를 듣고 보니 철식이는 싸움을 했어도 의로운 행동으로 칭찬받을 짓을 한 셈이다. 같은 싸움에 연루된 세 학생에게 훈계를 하고 벌을 주었다. 철식이가 의로운 싸움으로 칭찬받을 짓을 했는데도 차별한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는 소지가 있어 똑같은 꾸중으로 훈계를 했다.
꾸중하고 훈계하는 중에도 나는 속으로 '응, 철식이 너 참 잘했다. 너처럼 살아야 돼. 응 그럼 그렇구 말구. 그렇게 의롭게 살아야 돼'하며 마음으로 예뻐하였다.
차별 없이 모두 훈계한 뒤에 철식이를 조용한 장소로 혼자 불러 철식이의 의로운 행동을 칭찬해 주고 차별을 두어 혼내지 못한 담임의 입장을 이해시켰다. 그랬더니 지명(知命)의 나이가 된 철식이가 그 일로 그런지는 몰라도 지금껏 나를 존경하며 형처럼 따르고 있다. 그 때 의로운 싸움으로 칭찬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의롭게 산다는 이야기와 그런 인생관으로 사업도 한다는 얘기를 반창회 모임에서 들려 주었다. 철식이의 하는 일은 건축업인데 승승장구하는 건설업체로 자리매김했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모든 일이 잘 풀리고 막히지 않는 것은 고교시절 의로운 싸움을 한 자신을 담임인 내가 알아주고 칭찬으로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란 얘기도 했는데 듣기가 싫지는 않았다. 같은 싸움을 했는데도 철식이에게 더 애착과 정감이 가는 것은 무슨 연유에서일까?
아마도 그것은 철식이가 아름다운 싸움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은 한 쌍의 부부 얘기이다. 부부가 집에서 싸움을 하다가 남편이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당장 나가 버려!"
아내는 화가 나서 벌떡 일어섰다.
"흥, 나가라면 못 나갈 줄 알아요!"
무슨 일인지 잠시 후에. 아내가 자존심도 없는 사람처럼 집으로 들어왔다.
화가 풀리지 않은 남편은 "왜, 다시 들어왔어!" 소리를 지른다.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두고 갔어요!"
"그게 뭔데?"
"그건 바로 당신이에요!"
남편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날 이후 남편은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우리가 부부싸움을 하면 뭐해! 이혼을 하려해도 당신이 위자료로 나를 청구할 텐데!"
여유 있게 웃고 만다. 부부 싸움을 해도 이런 싸움은 즐기며 해 보았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싸움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80세가 된 할아버지가 새벽 산책길 나가시다 쓰러지셨다. 119로 즉시 병원에 실려 갔으나 뇌출혈로 의식 회복이 안 되어 식물인간으로 3년 째 병원 신세를 졌다. 병원비가 너무 많이 들게 되었다. 아들 형제가 지성으로 돌보며 병원비를 공동 부담했는데도 매달 들어가는 비용이 수월찮게 많았다.
이에 걱정이 된 할머니는 아들 형제가 돈 많이 들어가는 것을 걱정하여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이 에미가 보니 너희 아버지 회생하긴 다 틀렸고 병원비 감당할 수 없으니 산소마스크 떼도록 하자"고 하니 형제가 어머니한테 불끈하며 "어머니,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모자간에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할머니로서도 남편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나 정이 어찌 없을까마는 아들 형제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한 말이었다.
어머니로서의 모성애가 작용한 말이었지만 효성이 지극한 아들 형제들의 생각은 할머니와 달랐다, 말하자면 모성애와 효성이 아름다운 싸움으로 번지게 된 것이다.
여기서도 모자지간의 싸움이지만 아름다운 싸움인 것이다. 어머니와 아들의 서로 위하는 모성애와 효성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이번 이야기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 이야기이다. 한 기독교 가정에 연세가 많은 장로 할아버지가 간암말기에 전립선암 요추협착증 증세로 고생하시고 있었다. 나진노인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환자의 성화로 죽어도 집에 가서 죽어야 한다고 떼를 써서 집으로 모시고 갔다. 집에서 간병인을 두고 병치레를 하고 있었다. 딸 둘이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며 시중을 잘 들어드려 93세의 환자가 기적같이 병세가 좋아지고 있었다. 환자의 아내 되는 교회 권사 할머니는 자식들 고생시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리하여 자식들 마음고생을 시키는 게 안타까워 매일 같이 드리는 기도가 "주님 , 어서 빨리 우리 영감탱이 빨리 편안히 돌아가시게 해 주십시오."
두 딸이 드리는 기도는 "하느님, 저희 아버지 하루 속히 기적 같은 쾌유 만들어 주시어 10년만 더 건강하게 사실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같은 환자를 두고 하는 기도가 어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할머니의 할아버지에 대한 사랑이나 정감이 어찌 없을까마는 자식들의 경제적 사정과 여러 날 병수발로 고생하는 자식들을 걱정하는 마음에서였다. 자식을 생각하는 할머니와, 아버지 병환을 걱정하는 모녀지간의 아름다운 싸움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형이하학적인 입장에서 좀 더 많이 차지하거나 빼앗기지 않으려는 쟁탈의 싸움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겠다. 국회의원들도 자기 자신의 권익이나 당리당략을 위한 여야 대결의 피 터지는 싸움은 지양하고 국민의 복지와 밝은 사회 건설을 위해서 하는 아름다운 싸움을 해야겠다.
강자와 약자 사이에서 약자를 돕는 의로운 싸움을 한 철식이 같은 사람이 많이 나와서 더 많은 아름다운 싸움을 해주었으면 한다.
지금도 네팔에서 절망과 싸우는 이웃들을 위해 '선한 사마리아인'의 마음으로 돕는 싸움을 하는 아름다운 싸움이 끊이질 않기를 주문해 본다.
'아름다운 싸움'
너와 내가 따로 없는 우리 모두의 싸움이 되어 밝은 사회 건설에 이바지했으면 한다.
아름다운 싸움, 여기저기서 즐기는 싸움이 되어 시리즈로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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