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사실(事實)과 진실(眞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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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사실(事實)과 진실(眞實)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승인 2018-07-24 10:17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임숙빈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엘니뇨현상의 후유증이라 설명하던가, 온 나라가 낮이고 밤이고 식지 않는 무더위에 시달리는 중에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정치인의 사망 속보는 가히 충격적이다. 방송을 통해 보던 그는 정치를 잘 모르는 필자가 보기에도 자신의 신념을 향한 실천적 행보나 논리적 언변이 특히 인상적이고 강인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기에 그의 투신 소식은 듣는 귀를 의심하게 하였다.

선거와 관련해 댓글 여론 조작이 어떻고, 금전수수가 어떻고 연일 시끄럽더니 벌어진 일이라 더욱 마음을 무겁게 했다. 우리는 언제쯤 이런 비극적 현실에서 벗어날까. 어느 새 과거형으로 바뀐 이력을 찾아보며 금전 수수 사실(事實)을 유서에 남겼다는 그가 죽음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진실(眞實)은 무엇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죽을 만큼 절절했을 그의 진실은...

뜻하지 않은 일로 필자 역시 최근 '사실', '진실'이라는 단어에 대해 머리 아프도록 생각하는 시간을 보냈다. 이야기인즉 진행하고 있는 연구 프로젝트와 관련해 논문을 발표하고자 국외 학회에 참석했다. 그런데 그 학회가 매우 부실하였다. 개운치 않은 마음이었지만 어쨌든 순서에 따라 논문을 발표하였고, 그 곳에서 만난 한국인들과 불만도 토로하고 학회 일정에 이어서 받은 휴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참석 당일에야 시원찮은 학회임을 알았지만 마냥 인상만 쓰고 있을 수는 없으니 이국에서 내 나라 사람을 만난 반가움과 정보 등으로 기분을 추스렸던 것 같다.

하지만 귀국 후 예상치 못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학회의 주관처가 몇 년 전부터 이런 식으로 운영해왔으며 제대로 된 논문 심사도 없이 발표를 수락하는 등 문제점이 많았고, 이번에는 이를 취재하러 온 기자들이 있었으며 그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들의 일부라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사기성이 농후한 학회에 모르고 간 것이다. 갈 수 있는 일정과 타이틀에 속아 부실한 학회에 참석했다니.., 스스로의 놀람에 어떤 설명도 덧붙이고 싶지 않았는데 다음에는 더 큰 황당함이 뒤따랐다.



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하는 사진이 실린 것이다. 물론 학회에 참석했고 논문을 발표한 것은 사실이지만, "가짜 학문 제조...운운" 하는 제목에 함께 실린 사진이나 발표를 그 곳에 참석했다는 사실만을 나타낸다고 이해하고 다른 부정적인 내용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있을까. 모르고 간 것을 의도를 가지고 간 것처럼 쓰는 것은 진실(眞實)을 왜곡하는 것 아닌가. 아, 연일 터져나오는 수 많은 뉴스의 사실과 진실을 어찌 구분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한 상처는 또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사실과 진실 모두 같은 말 같아서 크게 구별하지 않고 혼용하지만, 사실(事實)은 객관적 자료나 감각을 통해서 얻어내는 것으로 특정 내용이나 사건의 발생 유무를 따질 때 주로 쓰고, 진실(眞實)은 그 사실들의 연관속에 들어있는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니 영 다른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사실이 진실이면 따질 것도 없지만 사실이 진실이 아닐 때는 억울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여러 해 전에 흥미 있게 읽었던 글과 사진이 떠오른다. 군인들의 사진이었는데 적군인 듯한 군인에게 한쪽에서는 총을 겨누고 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수통의 물을 먹여주는 것이었다. 해석에 따르면 이 때 어느 쪽으로 잘라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실(事實)을 접하게 된다는 것이다. 총을 겨누고 있는 쪽만을 보면 '잔인한 군인'의 사실적 자료가 되고, 물을 먹여주는 쪽만 보면 '인도주의적 군인'을 나타내는 사실적 자료가 된다. 하지만 이 모두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 진실(眞實)이다. 그 글은 미디어가 우리의 관점을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음을 말하려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거두절미(去頭截尾)의 아쉬움, 프레임의 덫, 세상살이의 무서움이 새삼스럽다.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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