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가 많은 우리 집은 먹어도 먹은 표가 안 났다. 6남매를 둔 엄마가 종종 하던 얘기가 있다. 시루떡을 한 시루 쪄서 먹여도 먹었다는 놈은 하나도 없었단다. 입이 많은 지라 밥상머리에서 아귀다툼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처럼 풍요로운 시절이 아니어서 그땐 누구네라 할 것 없이 삶이 곤궁했다. 여름 날 수박장수가 구루마로 수박, 참외를 가득 싣고 동네 정자나무 아래 나타나면 동네는 그야말로 잔칫집 분위기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냥 들떠 초여름에 수확한 보리를 집집마다 고무 다라이에 담아와 어른 머리통만한 수박을 사간다. 당시 시골의 시장 논리는 물물교환이 지배적이었다. 쌀, 보리, 콩, 계란, 닭 등 집에서 키운 것들을 생필품과 맞바꾸는 형식이다.
잊혀지지 않는 아이가 있다. 상구라는 아이인데 나보다 한 살 아래였다. 한번은 그 애가 정자나무 아래 땅에 떨어진 참외껍질을 주워 먹고 있었다. 흙묻은 참외껍질을 아무렇지 않게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걔네 집은 동네가 떠들썩할 정도로 늘 불화가 심했다. 상구 엄마는 호랑이 같은 시아버지한테 딱히 이유도 없이 쫓겨나 한참만에 집에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런 이유로 상구와 동생들은 밥도 제대로 못먹고 상거지 같은 몰골로 헤매는 게 다반사였다. 참외 껍질을 먹는 상구를 본 아주머니들이 혀를 차며 상구 당숙 할머니를 불렀다. 신수가 훤한 면장 사모님인 상구 당숙 할머니는 상구에게 참외 한 개 쥐여주며 귀찮은 파리 쫓듯 집으로 보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는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처럼 불쌍한 상구네만 빼고 그 날은 집집마다 수박 뽀개지는 소리가 요란했을 터다. 수박을 잘라 보면 간혹 속이 허연 덜 익은 수박도 나온다. 그러면 달리기 잘하는 오빠가 수박장수한테 갖고 가 바꿔오기도 한다. 우리는 점심은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각자 수박 반 통씩을 차지하고 마루에 둘러 앉아 엄마의 묘약을 기다린다. 엄마는 각각의 빨간 수박 속 위에 흰설탕을 한 수저씩 뿌린다. 그러면 우리는 수저로 수박 속을 판 다음 설탕과 섞어 퍼먹는다. 그냥 먹어도 충분히 달지만 엄마에게 설탕은 모든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엑기스인 셈이다.
미적 감각이 섬세한 예술가들은 과일도 무심히 보아 넘기지 않는다. 일본의 '문제적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잘 다뤘다. 성장과정이 남달랐던 만큼 그의 작품은 독특해 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사진이 포르노에 가까워 변태라고 비난받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내를 모델로 삼기도 한 아라키의 작품은 그야말로 에로틱의 정수를 보여준다. 아라키는 수박을 남성 욕망의 메타포로 간주했다. 기모노 입은 여성과 빨간 수박. 뭔가 수상쩍지 않은가. 짙은 화장을 한 기모노를 입은 여인이 쪼그리고 앉아 양 손으로 수박을 움켜쥐고 먹는다. 앞에는 빨간 속살을 드러낸 깨진 수박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다. 사물의 정체성이 예술을 통해 달라질 때의 쾌감!
대기가 지글지글 끓는 이 염천에 나는 여름을 만끽한다. 더위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눈 흘기겠지만 겨울을 견딘 보상이라고 생각하련다. 수박이 젤 맛있을 때는 따로 있다. 퇴근 후 저녁 먹고 공원에서 운동 후에 먹는 수박은 나를 겸허한 인간으로 만든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렇다는 거다. 파김치가 된 몸을 질질 끌며 퇴근하는 레미제라블의 고단한 인생들. 이들은 무엇으로 위안을 삼을까. 땀에 절은 몸을 샤워 후 대접에 수박을 가득 퍼 담아 TV 앞에 앉는다. 이럴 땐 시시껄렁한 오락 프로를 보는 게 제격이다.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수박을 먹으며 낄낄거리는 내 인생이 과히 시시하진 않다. 한 가지 성가신 게 있다. 자다가 화장실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과즙 덩어리 수박이니 감수할 수밖에. 그렇다고 변기가 깨진 적은 없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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