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북스 제공 |
'세실의 죽음은 처음부터 한 사자의 죽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처럼 함축되고 회로처럼 얽히고설킨 생태적 존재의 소멸이었다. -김산하(야생 영장류학자)'
2015년 7월, 미국인 트로피 사냥꾼 월터 파머가 짐바브웨 황게 국립공원에서 사자 한 마리를 죽였다. '사냥당한' 사자 세실은 짐바브웨 황게 국립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사자였다. 검은 털을 두른 갈기가 돋보였을 뿐만 아니라 사파리 차량이 접근해도 느긋하고 여유롭게 자리에 머무르곤 해서 관광객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정황상 트로피 사냥꾼인 파머는 그런 세실을 일부러 노렸다. 세실의 죽음은 파장이 컸다. 사건을 다루는 기사가 쏟아지고 100만 달러가 넘는 성금이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와일드크루(야생보전연구팀)로 답지했다. 미국 어류 및 야생 동물 관리국(USFWS)은 아프리카사자를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올해 6월, 또 다른 사냥꾼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검은 기린을 사냥했다. 돈을 냈다는 이유로 생명을 빼앗는 걸 정당하게 여기는 트로피 사냥꾼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세실이 죽기 몇 주 전 그의 마지막 사진을 찍기도 했고, 황게 국립공원의 사자들을 9년간 보호하며 관찰 연구해 온 사자 연구원 브렌트 스타펠캄프가 세실 사건을 본격적으로 다룬 세계 최초의 책을 출판했다. 세실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일대기가 우리에게 촉구하는 문제의식까지 담은 기록에 10년 가까이 찍어온 사자들의 사진도 함께다.
책은 스타펠캄프가 황게 국립 공원의 사자들과 인연을 맺은 계기에 대한 소개를 시작으로 세실을 비롯한 사자들이 어떻게 태어나고 자라는지, 어떤 방식으로 자연과 인간 세상의 경계에서 버텨 나가는지를 보여 준다. 생생한 다큐멘터리인 동시에, 인간 사회의 모순들이 세실의 죽음 뒤에서 작동하는 순간들을 드러내는 르포이기도 하다. 독자들이 찾아가기 쉽지 않은 아프리카 짐바브웨 야생 현장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자연 보호 활동가들의 육성도 생생하게 전해진다.
박새롬 기자 onoino@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