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새롬의 세상만사] 당연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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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새롬의 세상만사] 당연한 세상

  • 승인 2018-07-18 10:21
  • 수정 2018-07-18 10:22
  • 신문게재 2018-07-19 21면
  • 박새롬 기자박새롬 기자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반에는 알려지지 않은 부음이었다. 수업 전 출석부를 챙겨오는 일을 할 때라 담임선생님께서 귀띔해주셔서 알게 됐다. 물론 친한 친구들은 이미 알고 있는 일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 그 친구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가슴 한 쪽에서 머뭇거림을 느꼈다. 엄마라는 단어를 듣게 되면 친구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고 슬퍼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엄마라는 단어를 내뱉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엄마랑 어딜 가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면 집에서 어디 가라고 하셔서, 라고 돌려 말했다.

돌이켜보면 혹시 친구가 그런 마음을 눈치채고 더 쓸쓸해지지는 않았을까, 씁쓸한 기분도 든다. 그러나 직장 후배에게 아버지가 안 계시다는 걸 알았을 때도 역시 어떻게든 아빠라는 단어는 말하지 않으려고 애쓰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편집기자로서 제목을 짓다가 비슷한 망설임을 느꼈다. 어린이 교육에 대한 지면에는 부모님과 함께 체험교육 프로그램을 즐겼다는 내용이 많았다. '엄마 아빠 함께하니 즐거워요'같은 표현을 떠올리다 멈칫했다. 할머니와 둘만 사는 아이, 기억나는 한 가족이 없었던 아이, 아빠의 건강이 안 좋은 아이가 본다면 마음에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이 10만6000건 이라는데, 엄마 아빠가 헤어진 아이의 마음은 또 어떨까. 가족이란 엄마 아빠가 있는 것이 당연한 걸까. 다수의 가족이 엄마 아빠를 포함한다는 전제로, 소수의 가족이 입을지 모르는 상처를 당연하게 생각해도 되는 걸까.



누군가에게 사귀는 사람이 있는지 물을 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성에겐 여자친구가 있냐고, 여성에겐 남자친구가 있냐고 질문한다. 남성으로서 남성을 사랑하고, 여성으로서 여성을 사랑하는 동성애자에겐 질문 자체가 성정체성을 묻는 폭력이 될 것이다. 당연히 이성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상. 동성애자는 사랑에 대한 질문을 받는 순간마다 조금은 외로워지지 않을까.

지난 14일 열린 성(性) 소수자 축제인 서울퀴어문화축제의 메인이벤트 '서울퀴어퍼레이드'에는 6만여 명이 참여했다. '성다수자'지만 그들을 응원하기 위해 모인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그날 모인 성소수자들은 상처받지 않았을 것이다.

다수의 시각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소수는 상처를 받게 된다. 아이에게 보호자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면 엄마 아빠라는 말 대신 어른이 계시냐고 물었으면 좋겠다. 애인이 있는지 묻고 싶다면 있다면 좋아하는 사람이 있냐고 표현했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슬프게 할 수 있는 당연함은 무심하고 폭력적이다. 세상엔 가족의 형태도 성정체성도 다양하다. 당연하게 여겨져야 하는 건 다수의 시각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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