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덥지근한 날이 계속됩니다. 장마가 일찍 왔다고 하지요. 매년 여름마다 있는 일이지만, 답답할 정도로 습기가 많고 무더워 불쾌하기까지 합니다. 냉난방문제 등 의식주 모두에 상당한 비용을 치르는 일과 함께 4계절이 분명한 아름다운 지역에 사는 대가라 생각합니다. 그 좋은 4계절이 무너지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나 견해도 많이 들립니다. 인간이 선호하는 상태나 현상은 지켜져야 하겠지요. 기후변화가 심각한 인류문제로 대두되었지만 개개인의 대처는 소홀한 것 같습니다.
다소 불편함이 있더라도 기후가 지켜지기를 희망하지요. 지난 100년 사이 우리나라 평균 기온이 섭씨 1.5도 상승한 것으로 조사 되었지요. 세계 평균 0.5도 보다 훨씬 높습니다. 변화에 자연적 원인과 인위적 원인이 있지요. 인위적 원인 중 온실가스가 기후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더군요. 산업화 과정에서 있은 막대한 화석연료 등 에너지 소비가 이산화탄소를, 가축 배설물, 농업활동, 쓰레기 매립장에서 발생하는 메탄이 주요 온실가스라 합니다. 이를 줄이려는 세계적인 노력이 있지요. 당연히 개개인 환경보전을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세상엔 지켜야 할 것과 변해야 하는 일이 있지요. 희망하는 바를 이루도록 노력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법륜(法輪, 1953년 4월 11일 ~ , 울산 출생, 승려) 스님은 "손에 든 찻잔이 뜨거우면 그냥 놓으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뜨겁다고 괴로워하면서도 잔을 놓지 않습니다"라 하더군요. 불편하거나 잘못된 것을 알면서 지속하는 것, 집착하는 일 같은 어리석음이 있나요?
사실 모든 명칭이나 정의는 우리 의식상태지요, 존재 그 자체와는 별개입니다. 플라톤(Platon, 기원전 427 ~ 347, 그리스 수학자이고 철학자)의 말을 차용하자면, 매사가 마음 상태이지 외적 조건이 아닙니다. 모든 존재는 아름답지만, 사람이 생각하는 관점이나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그러면서, 마치 무슨 진리나 되듯 서로 부여한 의미와 역할을 다해야 하고,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하지요. 그에 벗어나면 부정적 대상이 됩니다. 제아무리 먹기 좋은 과실나무라 하더라도 길 가운데 있다면 제거 대상이 되지요. 유익한 산야초라도 밭에 나고 자라면 잡초가 됩니다. 그렇거나말거나 그들 나름 의미 있는 존재임은 확실하지요.
아침 일찍 연말에 있을 우리춤공연 협의를 했습니다. 공연 제목부터 기획, 광고 등 폭 넓은 의견 교환을 했지요. 협연 문제로 오전엔 난타연습장에 갔습니다. 한 번씩 조율해보고, 가치관, 예술관 등 서로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서예 개인전 사회를 본 일이 있는데, 작가께서 감사하다며 점심을 샀습니다. 어른들 말씀이 많은 공부가 되더군요. 자리를 옮겨 오후엔 9월 대전 중구 효마당 축제 시 공연될 연극공연 협의를 했지요. 노익장이랄까요? 열정을 배웁니다. 상담 아닌 상담 차 또 한곳을 다녀돌아왔습니다.
오가는 차 안, 냉방기 켜도 시원해지지 않더군요. 걸친 옷이 눅눅해집니다. 저절로 몸이 무거워 지더군요. 집에 오며, 종일 한 일이 필자 본연의 일과 무슨 관계인가, 뭐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모두 문화운동에 포함 되겠지요.
스스로 자위도 해봅니다. 역할이랄까? 일순간 드러나고 안 나고 문제일 뿐,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연극무대에 주인공도 있지만 단역도 있지요. 무대에 보이지 않는 제작진staff도 많습니다. 어떤 역할이고, 작더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요. 그럼에도 대부분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지요. 주인공이란 명명은 있어도 주인공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관계자 모두 주역이지요. 서로 돋보이게 노력할 때 좋은 공연이 되는 것입니다.
그 명명마저 일시적인 것이지요, 제아무리 뛰어난 연기자라도 항상 주인공이 아닙니다. 자신의 무대에서나 가능한 일이지요. 음악회에 가면 관객이 되어야 하지요. 당연히 관객은 관객임이 중대 역할입니다. 관객 없는 무대는 생각할 수 없지요.
결국, 쓰임새가 있어야 잡초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켜야 하거나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하지요. 곧 사라질 불쏘시개라도 주어진 역할이라면 기꺼이 하자는 생각을 해 봅니다. 행복의 크기는 생각의 크기와 비례하니까요.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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