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희 음악평론가.백석문화대 교수 |
우선 글린카의 오페라 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은 호쾌하게 출발했다. 밍크주크의 호방한 지휘 스타일에 야성적인 느낌이 묻어나며 역동성이 요구되는 서곡의 역할을 무리 없이 수행했다. 그러나 관객의 호기심을 자아냈던 네이슨 리는 촉망받는 피아니스트로서 미래에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과 역량은 충분히 보여주었으나 협연은 기대에 못 미쳤다. 크고 작은 국제 대회에서 연거푸 우승하며 차세대 피아니스트로 주목받은 네이슨 리에게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도전이며 동시에 한계를 보인다.
다소 느리게 느껴질 정도로 지극히 안정적으로 음악을 만들어나간 피아니스트에게 고도로 난해한 기교나 서정적인 아름다움 표현은 디테일에 불과했다. 문제는 피아노가 오케스트라를 압도해야 하는 음악표현에서 연주력이 충분히 따라오지 못했다는 데 있다. 음악의 흐름에 따라 좀 더 열정적으로, 좀 더 격렬하게, 좀 더 아름답게, 좀 더 단단하게 울림을 만들어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대전시향 반주도 연주자와 완성도 높은 음향으로 온전한 일치를 이루지 못했기에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앙코르곡 스카를라티 소나타 K.141 연주의 뛰어난 테크닉과 섬세한 음악성이 입증했듯이 본인만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레퍼토리를 계발해 집중한다면 개성 있는 피아니스트로 우뚝 설 것이다.
대전시향의 야심작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은 스탈린이 죽자마자 창작된 곡으로 구소련 사회의 암울함과 새 시대를 향한 희망의 빛을 희미하게 드러낸다. 작품 구성과 음악양식 면에서 쇼스타코비치 스스로 흡족해했던 교향곡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며 인간의 감정과 정열을 그리고 싶다고 언급한 내용은 작품 이해에 본질적으로 작용한다. 아마도 여느 화려한 교향곡 효과를 기대했던 관객 입장에서는 지루할 수도 있었겠으나 대전시향은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목관악기, 현악기, 금관악기, 타악기 개개 음형이 지닌 상징적인 효과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에 내재된 감성을 진지하게 드러냈기에 결국 음악회가 끝난 후의 울림은 예상외로 컸다.
오지희 음악평론가·백석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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