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천읍성 군자정과 북벽/사진=조영연 |
동서 타원형의 면천읍성 성벽은 오늘날 다 없어지고 서벽 일부에서만 복원부와 잔존벽, 치 흔적이 약간 확인될 뿐이다. 서문지는 확실하고 향교와 골정지로 통하는 동문지는 성벽 절단부에 해당된다. 북문지는 안샘 뒤에 자연스레 이뤄진 통로가 된다. 북문 안쪽 안샘은 지금도 맑은 물이 계속 솟아나 군자지에 물을 공급한다. 여지승람 기록으로 보면 둘레는 약 2km 가량으로 추정되는데 현재 추진 중인 복원계획은 구조나 시설 등 여지승람을 참고하는 듯하다.
면천읍성 풍락루/사진=조영연 |
가지런히 복원된 서벽 안으로 들어서면 면사무소 앞에 서 있는 외로운 풍락문이 객을 맞는다. 면사무소 문 앞에 세워 면장이나 공무원들에게 백성들이 즐거움을 누리게 만들도록 열심히 일하라는 준엄한 경고문처럼 보이는데 어쩐지 좀 외로워 보이고 초등학교 운동장 쌍둥이 거목들은 수백 년 애환을 가슴에 묻고 묵묵히 성안을 내려다본다. 느티나무에서 한 걸음 옆 군자정의 검은 색 팔각지붕이 하얀 벚꽃 사이로 살짝 내 보인다. 안샘에서 내려온 맑은 못속에 정자의 그림자가 고요하다. 돌다리로 통하던 연못 속 정자 난간에 기대면 벽공 아래 둥그스럼한 몽산 이마가 참 인자하다. 이름이 고운 안샘은 물조차 정답다. 지금도 바닥돌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물속에 보호각 천장 단청이 푹 빠졌다. 부드러운 바람에 이는 붉은 색, 비취색 샘바닥 물결이 참 신비스럽다. 고려 개국 공신 복지겸이 신령의 뜻을 받아 이 물로 두견화를 넣어 빚은 술로 치병을 했다는 영험한 전설까지 보태졌다. 그 이후로 안샘은 두견주로 오늘까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니 풍락이 여기에 와서 제 뜻을 펼친 것일까.
면천읍성 골정지와 몽산/사진=조영연 |
면천읍성 골정지의 '건곤일초'/사진=조영연 |
동문재를 넘어 관가지를 벗어나 밖에 나서면 몽산 기슭 양지 바른 향교말이 앞에 있다. 그 발치에 작고 아담한 골정지(骨井池 -고려때 벽골지)가 자리했다. 산과 물, 꽃이 하나 된 연못에 주변조차 고요하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깔끔하게 다듬어진 뚝방 안 바람조차 시비 걸지 않고 지나는 못속에 몽산과 향교가 거꾸로 담겼고, 깜찍하고 아담한 초가지붕의 乾坤一?亭이 얌전히 떠 있다. 자그만 나무다리를 건너 들어가는 품이 소궁남지(小宮南池)다. 때 맞춰 물 위를 스치는 큰 물새 한 마리가 짝을 하나 더 데리고 간다. 군수로 재직하며 치수관리 등으로 농업을 장려하던 연암 박지원의 실학적 숨결이 깃들어 있다니 더욱 가까이 마음속에 들어온다. 정자에 앉아 책을 읽으며 집필하던 당시를 잠시 되돌아본다. 정자 이름은 두보의 싯구 일부다.
몽산성, 읍성벽, 군자정, 골정지 수백년 고목에 눈과 마음이 풍요롭다.
조영연 / '시간따라 길따라 다시 밟는 산성과 백제 뒷이야기' 저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