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가난을 구할 수 없지만 위로할 순 있다. 연극제 폐막식에서 정대경 한국연극협회장이 한 말이다. 울컥했다. 세상을 위로할 수 있다는 연극이 그 어떤 예술 만큼이나 가난하다는 아이러니는 차치하고 무대에 선다는 행복만으로 또 다른 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연극의 위대함이 새삼 다가왔다.
대전에서 열린 제3회 대한민국연극제가 끝났다. 18일간 전국을 대표하는 16개 극단이 창작극을 선물했다. 연극으로 탄탄히 실력을 다진 유명 배우들도 매일 밤 대전시민과 만나 자신의 삶을 이야기했다. 크고 작은 공연과 퍼포먼스도 끊임없이 열렸다. 대전시민으로서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개최지역 대표 팀은 대회 최고상을 주지 않는다는 관례를 깨고 우리 지역 극단이 대상을 받은 것도 행복에 덤을 얹었다. 수상을 축하한다.
벅찬 감동이 서서히 스며들기 전, 그런데 연극제를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다. 안방에서 열린 축제의 주인공이 된 기쁨을 누리고 있는 가운데 누군가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강원도 대표로 참가한 극단 소울시어터 얘기다. 디제잉 페스티벌을 방불케 하는 폐막식 행사장 입구에 손팻말을 들고 서 있던 이들. 소울시어터는 '협회'가 정한 규정에 충족하지 못해 시상에서 배제됐다. 협회는 연극 연출과 배우의 70%를 협회원으로 구성해야 하나는 규정을 뒀다. 협회는 연극제가 임박한 지난달 22일에서야 이 같은 사실을 소울시어터에 알렸다. 지역 연극인을 대표·대변하는 한국연극협회 강원지회도 무신경하긴 마찬가지다. 사건 전후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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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폐막식 무대 앞에 소울시어터 단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서 있자 행사 관계자가 만류하고 있다. |
내 집에서 열린 잔치에서 누군가는 입을 내밀고 있다. 그들 간 잘잘못을 가리기 전에 일단은 찝찝함이 크다. 힘들게 준비했을 잔치에 옥에 티가 남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짚고 넘어갈 부분은 확실히 해야 한다. 세상의 가난을 위로할 수 있는, 희망과 행복을 주는 연극은 연극협회만의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연극제'는 타이틀에 맞게 대한민국에서 연극을 사랑하는 모든 이의 축제여야 한다. 그러라고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연극제가 열리는 거다. '협회'는 '같은 목적을 가진 이들이' 설립해 유지해 나가는 모임이다. 이들의 목적이 연극 그 자체에 있다면 이번 같은 일은 두 번 다시 없어야 한다. 책임 있는 수습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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