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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비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비가 오면 옷이 젖고 축축한 기분이 별로 즐겁지 않습니다. 그러나 맑은 하늘임에도 불구하고 초여름에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를 맞은 어릴 적 기억은 지금도 상쾌함으로 느껴집니다. 흔히 이런 비를 여우비라고 하는데, 그런 여우비의 상쾌함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우비가 내릴 때 약간의 비릿한 냄새가 났지만 땅에서부터 풍겨오던 풋풋함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냄새가 그리 싫지 않았습니다. 그 기억 때문인지 비가 오면 어릴 때 그 여우비를 피해 들어간 처마 밑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을 바라보던 추억이 떠오르곤 합니다.
이제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땀을 많이 흘리고 더위에 약한 나는 여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름에 내리는 장마는 더 좋아하지 않습니다. 비가 더위를 식혀준다고는 하지만, 장마의 축축함과 불편함은 오히려 불쾌함을 주기도 합니다. 여름보다는 겨울이 더 좋고, 겨울보다는 봄이 좋습니다. 그러나 계절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역시 가을입니다. 가을이 왜 좋은지를 말하라고 하면 정말 수많은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가을의 정취와 단풍은 물론이고 맑은 하늘과 공기, 그리고 풍성함 등등 내가 가을을 좋아하는 이유는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러나 가을이 좋은 수많은 이유들 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나는 가을 중에서도 초겨울로 넘어가는 시기가 가장 좋습니다. 약간은 쌀쌀함이 느껴져서 외투를 입어야 하는 그런 시기가 정말 좋습니다. 이 시기는 이미 거리와 들판과 산은 가을의 절정을 지나 겨울을 준비하는 때입니다. 나무들은 단풍을 불태우는 절정의 시간을 지나 낙엽을 떨어뜨리고 얼마 남지 않은 마른 잎들을 안간 힘을 다해 붙잡으려고 하고 있고, 들판은 이미 추수를 마치고 뿌리만 남은 볏짚으로 찬란했던 여름의 흔적을 남기고 있는 모습이 내게는 아련한 향수를 마구 불러내 주기 때문에 이 시기가 정말 좋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런 모습이 내게는 어떤 위안도 주고 행복함을 주기도 합니다.
흔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무심코 갑자기 나타나는 통찰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아마도 동양철학에서는 '도를 깨우침'을 의미하는 '득도'(得道)라고도 하고, 기독교에서는 '신의 존재가 현세에 드러남'을 의미하는 '에피파니'(epiphany)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현자도 아니고 도를 수행하는 수도자도 아니라서 이런 '득도'나 '에피파니'를 경험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고,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상의 생활 속에서 순간순간 느끼는 아주 짧은 '순간의 행복함'은 가끔 경험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커피 깡통의 진공 포장을 뜯을 때 나는 신선한 커피향이 내게는 바로 '순간의 행복'입니다. 그리고 늦가을 길을 가다 문득 맡게 되는 낙엽을 때우는 냄새가 내게는 또 다른 '순간의 행복'이고, 발에 밟히는 낙엽의 아스작 거리는 소리는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사실 왜 이런 순간의 것들이 행복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인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순간의 작은 것들로 행복감을 느끼는 경우를 종종 경험합니다. 일을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고 바라본 하늘의 붉은 노을 때문에 행복하기도 하고, 자갈밭에 피어난 작고 왜소한 노란 들꽃으로 마음을 위로 받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것들 때문에 우리가 도를 깨우는 것도 아니고. 신의 현존을 경험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바로 이런 아주 작은 것들로 인해 우리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도 있고, 그것으로 인해서 잊고 있었던 과거의 기억을 되살릴 수도 있습니다. 비록 그것이 심오한 도를 깨우치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렇게 우리에게 작은 행복을 가져다주는 아주 작은 것들이 우리 주변에 참 많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이 너무나도 작기 때문에, 그 작은 것의 가치를 무시하거나 잊고 지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너무 작은 것이기에 무시해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님에도 말입니다. 오히려 작기 때문에 더 아름답고, 더 가치가 있는 것이고, 더 소중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이 작다는 이유만으로 무시하고 망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 보면 '나'라는 존재도 종교적으로 신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고 인간사의 전체에서 보면 우리가 작은 것이라고 무시하고 망각하고 있는 '아주 작은 존재'와도 같은 것인데 말입니다.
이 의미는 '나의 존재'가 누구에게는 작은 희망도 되고, 작은 행복도 될 수 있고, 또 순간의 행복을 주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말도 됩니다. 마치 우리가 일상에게 순간적으로 느끼는 작은 행복의 단서를 주는 작은 것들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나에게 행복을 주는 순간의 작은 것들처럼 나도 누구에게는 순간의 행복을 주는 작은 존재로 인식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작은 순간의 행복들을 찾고 또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마가 시작된 이번 주말 내게 행복을 주는 작은 것들을 주변에서 찾아보아야겠습니다. 그리고 나의 존재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작은 존재가 될 수 있는 지도 고민해 보아야겠습니다. 아마도 이런 것들이 모아지면, 나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작은 순간의 행복들이 모여 더 풍요로운 행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행복한 주말되시길 기원합니다.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광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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