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하늘이 내린 향내 나는 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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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하늘이 내린 향내 나는 보석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 승인 2018-06-29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병신(丙申)년 1월 20일은 별난 혹한의 추위였다. 거기다 숱한 날 중에서 기억하고 싶지도 않을 만큼 우울한 날이기도 했다. 가슴 죄는 불안의 기류가 어두운 그림자로 마음을 뒤덮었기 때문이었다.

핸드폰 문자 오는 신호에 급히 폰을 열었다. 김순자 부장한테서 온 카톡 문자였다.

「 남 부장님! 놀라지 마시고 기도해 주세요. 지금 저는 내일 수술하려고 아산 병원에 가고 있어요. 가슴 한 쪽을 완전히 절제하고 시간이 지나니 허리 다리 등 여러 곳에 후유증이 나타나서 더 늦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병원 가는 길이지만 막상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네요. 수술 끝나고 전화 드릴게요. 이 강추위에 면회 오시면 절대 안 돼요. 오시면 제가 마음이 너무 아플 거 같아요. 편안한 하루 되시고 눈길 조심하셔요.」

청천벽력 같은 문자 내용에 가슴이 철렁했다. 순간 나는 좌불안석의 또 다른 환자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순자 부장은 속마음까지 털어놓고 허물없는 대화까지 주고받는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 날은 매섭고 추운 날씨만큼이나 마음은 카톡 문자 하나로 꽁꽁 얼어붙어 마음이 무거운 어둠으로 도배가 된 날이었다.



김순자 부장과 내가 알게 된 것은 대덕고 근무할 때니까 17, 8년 된 것 같다. 세월은 흘러도 우리 두 사람은 이성을 떠나 성격과 인생관이 서로 비슷한 면으로 통해서 변하는 것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좋은 친구로 신뢰하고 존경하고 의지하는 사이였다. 그래서 서로가 어려울 땐 힘이 되어 주는 존재임에 틀림없었다. 거기다 근본적인 생각과 행동하는 것이 암묵적으로 통해서 빨리 좋은 친구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바로 카톡 답신 문자를 날렸다.(1월 20일)

「부장님 문자보고 많이 놀랐지만 주님의 은총과 자비의 보살핌이 있으시리라 믿어요. 천사처럼 사신 분이니 매일 새벽마다 드리는 저의 기도가 헛되지 않으리라 믿어요. 기적 같은 은사 주실 것이니 김 부장님 우리 같이 힘내요. 웃으며 맞을 수 있는 좋은 수술 결과 기적 같은 쾌유로 더욱 튼튼한 건강 주실 것이니 우리 열심히 기도해요. 용기 잃으면 안 돼요. 매일새벽 청원기도 간절히 드릴게요. 김 부장님 우리 친구로서 못다 한 일 너무 많아요. 김 부장님 우리 같이 힘내요.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카톡으로 먼저 손이 갔다. 카톡에 새로 온 문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수술실 들어가기 전 안심시키려고 김 부장께 급전 같은 문자를 또 날렸다.

「찬미 예수님! (1월 21일)

김순자 부장님께 마음의 평화를 가질 수 있는 은총과 자비가 있으시길 간절한 청원기도로써 바칩니다. 김 부장님 곁에는 부장님을 극진히 사랑하시는 주님이 늘 보호자로 계시고 평생 신뢰해도 좋을 남상선 요셉의 매일 기도가 있으니 기적의 응답 틀림없이 주실 것입니다. 마음의 평정을 찾으시고 우리 감사하는 마음으로 은총을 기다려요. 가족들 친구들 지인들 모두의 마음을 모아 기도드립니다. 김 부장님과 가족들 모두에게 마음 편히 가져도 될 은사와 평화가 있으시길 빕니다.」

김 부장은 오전 7시30분에 수술실로 들어가 오후 5시 30분에 나올 예정이라고 김 부장 여동생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수술 내용은 7년 전 수술한 오른쪽 가슴을 재건하는 복원수술이었다. 그런데 수술실서 집도의가 나온 시간은 오후 5시 30분 예정시간보다 4시간 더 걸린 오후 9시 30분경이었으니 장장 14시간 수술이었다. 환자 가족과 친지 친척들은 불안상태의 초조감으로 감내하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최선을 다한 만큼 결과가 안 좋은 상황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집도의가 안 좋은 수술 상황을 그대로 인정하고 구차한 변명 없이 인간적인 면을 보여 주더란 것이었다. 핏기 없는 얼굴에 숨만 붙어 겨우 맥이 뛰고 있는 아픈 통증의 환자를 보고 집도의가 " 죄송합니다. 이렇게 고생 많이 하셔서 어떡하죠? "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인간미 넘치는 얼굴에 잦은 회진과 기도로써 위로하고 손을 꼭 잡아주며 주문하는 말이 "묵주기도 열심히 많이 하세요" 하면서 안도감과 회생의 의지를 온 몸으로 부어주고 나가는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도 환자의 회복상태가 느낌으로 오지 않자, 안 되겠다 싶었는지 2월 2일 재수술을 했다. 2차 수술은 너무나 어려워 환자한테는 천국과 지옥을 넘나드는 듯한 고통이었는데 환자는 원망의 말 한 마디가 없었다. 타고난 천사 그 자체였다. 피 주머니 5, 6개 매달고 있는 환자 모습이 안타까워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보통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환자 측에서 보상금 소송으로 병원 측과 의사한테 보상금 더 받아내려고 옥신각신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인데 김순자 부장은 이런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인간적인 면에서 의사도 사람이니까 실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김 부장이었다. 거기다 집도의가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니까 보통사람으로서는 하기 어려운 배려와 관용으로 용서를 해 준 것 같았다.

참다운 용기로 집도의를 문제 삼지 않고 관용으로 용서해준 김순자 부장의 행동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김 부장의 하해 같은 관용과 인간적인 마음이 한없이 우러러 보인다. 하늘이 내려준 보석 같은 마음에 가슴이 찡해 온다.

김순자 부장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퇴원했다.

지인들이나 친구들 인근 주민들한테 알리지 않고 슬그머니 집에 와서 몸조리를 했다. 장기간 두문불출이었으니 사람들도 알 턱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친구의 방문으로 상황이 들통 났다. 환자가 병약한 몸으로 집에 있다는 것이 입소문으로 새어나갔다. 인근 사람들의 격려와 걱정의 왕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지인들과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이 미역국 끓여오는 사람, 추어탕 끓여오는 사람, 찰밥해오는 사람, 육개장, 사골 국, 곰탕을 끓여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입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중에는 지인들과 가까운 동료들이 김치 담아오는 사람, 잡채 만들어오는 사람, 찌개 끓여오는 사람, 나물 무쳐오는 사람, 호박죽 쑤어오는 사람, 야채 스프 끓여오는 사람…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어떤 할머니는 손녀딸 봐주느라 시간이 없었다면서 그 바쁜 와중에 짬을 내서 된장찌개에 콩나물 무친 것 멸치 볶음이며 배추 겉절이에 해물 탕까지 끓여오는데 올망졸망 바리바리 싸 가지고 온 것을 한데 모아 상을 차리니 고금에 보지 못한 진수와 성찬의 화려한 데이트자리였다.

환자가 이순(耳順)이 넘는 그 나이가 되도록 사람냄새 풍기며 인간답게 살았으니 그 동안 영수증 없이 베푼 모든 선행이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가슴 찡한 새로운 풍속도였다.

순이 엄마의 손때 묻은 곰탕국에서도, 보미 할머니의 추어탕에서도. 철수 엄마의 장어구이에서도, 과부댁 억순이가 끓여다 준 해물 탕 그릇에서도, 똘순이 엄마의 된장찌개 그릇과 식욕을 돋구는 산과 들의 향긋한 내음이 이 나물 저 나물 접시에서도, 동서고금에도 볼 수 없었던 정성과 사랑이 숨 쉬고 있었다.

인간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보석보다 더 귀한 정성과 사랑의 백화점이 오너가 따로 없는 김순자 부장 집에 들어서게 되었다. 입으로 들어가는 곰탕국과 이것저것의 음식이 반이라면 눈에서 새어나오는 행복이 묻어 흐르는 액체가 반이 되어 향방 없이 멋대로 흐르고 있었다. 세상에서 보기 드문 아름다운 광경이 가슴 찡한 모습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인생 즐거움이 이보다 더한 것이 있으랴. 천만금으로도 보상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 소유주 없는 행복감으로 뭉클대고 있었다.

정성과 사랑의 도가니에 파묻혀 감동의 눈물로 얼룩진 김순자 부장이 부럽다. 몸이 아파서 행복의 도가니에 빠지는 그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주문이라도 해서 나도 한 번 아파보고 싶다. 심한 생채기를 내서 한 번 드러누워 보고라도 싶다. 아니, 그 흔한 맹장 수술이 아니라면 나일론 환자라도 되어 보고 싶다.

그러나 그런 사랑은 김순자 부장만이 받을 수 있는 사랑이었다. 하늘에서 내려준 보석만이 받을 수 있는 특권 같은 은총이었다.

이순을 뒤로한 삶의 과정에서 김 부장의 말 한 마디는 가난한 사람에게는 그들의 밥그릇이 돼주고, 환자한테는 어머니의 약손이나 약이 돼 주었기 때문에 받는 사랑이었다.

겨울에는 그녀의 한 마디가 헐벗은 사람에겐 외투나 내복이 되어 주고, 따듯한 장갑이 돼 주어서 받는 보석 같은 사랑이었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따로 있겠는가!

비가 내릴 때엔 상대방의 우산이 돼 주고, 추울 때는 장작불이나 화로가 돼 주려는 마음으로 살면 되는 거지 뭐 특별한 거 있겠는가!

김순자 부장은 자신의 생사에 관련되는 의료사고에도 사람냄새 풍기는 관용을 베풀어 의사를 용서해 주었다. 의료사고 보상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관용과 배려 사랑으로써 마무리를 하였다. 보통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보시(普施)의 관용으로 향내 나는 삶의 진면목을 보여 주었다. 보석 같은 희귀성의 사람 향내를 풍겨 준 것이다.

향내 나는 보석으로 사는 분이었으니 의료사고 재수술까지 받았지만 인과응보의 원리에 힘입어 빠른 회복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완쾌에 가까운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부메랑의 원리로 받은 축복이라 생각한다.

하늘에서 내려준 향내 나는 보석 !

그의 천성과 사람냄새 풍기는 삶에서 부쳐진 이름이리라.

우리 모두 김순자 부장처럼 따뜻한 가슴과 사랑으로, 하나 되는 삶이 될 수 있게 하소서.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남상선210-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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