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대표 한울림의 경연작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공연 모습. |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는 주인공 이육사를 공시적·통시적 관점으로 바라본다. 통시적 관점에서 작품은 시인의 삶을 시대 순으로 추적해나간다.
보헤미안처럼 자유분방한 삶을 살던 20대, 무장투사를 꿈꾸며 결기에 차 있던 30대, 죽음을 앞두고 회한에 젖은 40대의 모습이 러닝타임 동안 통시적으로 펼쳐진다. 동시에 공시적 관점에서 주인공의 면모는 다양한 자아를 통해 드러난다.
감옥 밖의 이원록, 죄수가 된 264, 이육사의 시적 자아 'S'다. 실제로는 물리적으로나 시제 상으로나 만날 수 없지만 세 자아는 서로 대화하고 대립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들은 독립운동가로서 시인으로서 이육사의 고뇌를 한층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데 일조한다.
이야기 도중 등장하는 '광야' 등의 시 역시 시인의 내면과 태도를 입체적으로 나타내는 중요한 장치로 쓰인다. 서사에서 중요한 변곡점마다 시가 등장해 시인의 고뇌를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작품은 시를 매개로 이육사의 행적이 하나로 이어지도록 과감히 시도한다.
시대를 널뛰는 이야기의 행간을 시의 해석으로 연결하는 작업이 극중 지속적으로 이뤄진다. 지사처럼 의지적이기도 때론 소녀처럼 서정적이기도 한 시인의 자아를 하나로 통할하는 데 많은 공력을 들인 흔적이 엿보인다. 시문학 장르에 대한 이해와 시인에 대한 깊고 넓은 연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결말에 이르러서는 자아 간 대립이 격화돼 심리극의 양상이 짙어지는데, 창작자는 여기서 역사적 인물 이육사를 실존적 인물로 변모시킨다. 이원록과 시적자아 'S'로부터 비판을 받는 과정에서 죄수 264는 광기어린 모습을 보인다.
고뇌에 고통 받는 자신을 고뇌함으로써 '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다소 과잉된 자의식으로 비춰지기도 하는 주인공의 결말은 '광야'에서 말하는 초인과 거리가 있지만, 영웅을 인간으로 표현하려는 창작의 의도가 담긴 결과이기도 하다.
이날 공연은 오후 7시 30분 기준으로 200여 명이 찾았다. 관객들은 장대하면서도 심오한 연극이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학생 구 모(22) 씨는 "세트와 이야기의 스케일이 정말 컸다"며 "스펙타클한 시대극을 보는 느낌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등학교 국어교사 이 모(37) 씨는 "이육사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공연이었다"며 "난해하기도 하지만 깊이 있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한윤창 기자 storm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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