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대표 선창의 경연작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공연 모습. |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의 서사는 기본적으로 일상의 리얼리티를 추구한다. 일상은 기-승-전-결 구조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실에선 주요사건의 흐름과 관련 없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며 무의미한 일들이 느슨하게 진행되기도 한다.
따라서 작품에는 극적인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다. 더불어 작품의 창작자는 빠른 전개를 지양함으로써 일상의 디테일을 묘사한다. 등장인물인 가족 구성원은 극중 음식재료를 다듬고, 밥을 같이 먹고, 노래를 부른다. 극을 이끌어가는 갈등 요인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들이다. 결정적 장면에 따라 등장인물 간 갈등이 연동돼 빠르게 흘러가는 보통의 작품과 창작 태도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셈이다.
그럼에도 이야기가 늘어지지 않고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이유는 내레이션의 탁월한 역할에 있다. 등장인물의 내레이션을 통해 각 인물의 내면이 드러나고, 그 내면에 표현된 갈등이 관객에게 등장인물의 행동 동기를 분석하게 만든다. 절정에 이르기 전까지 일상을 이어갈 뿐 갈등을 표출하지 않는 등장인물의 모습을 관객은 흥미롭게 지켜보게 된다.
본래 내레이션 기법은 연극 이론가 브레히트의 주장대로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기 위해 고안됐으나, 작품에선 일상의 리얼리티를 유지하면서 드라마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재창조 됐다.
내레이션은 또한 작품의 여운을 자아내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로에게 차마 말하지 못한 사랑과 미안한 감정이 등장인물의 내레이션을 통해 전달돼 애잔함을 더한다. 대단원에서 등장인물은 가족 간의 사랑을 대화로 표현하지 않으면서 상관물인 '홍매'를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극중 아버지가 작고한 후 아들이 들려주는 내레이션은 비록 소통하진 못했지만 서로 간의 정을 확인한 가족의 안타까움을 관객에게 전한다.
이날 공연은 오후 7시 30분 기준으로 130여 명이 찾았다. 관객들은 잔잔하면서도 긴장감 있는 연극이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고등학생 정 모(19) 양은 "등장인물 사이의 애증이 풀어지는 과정이 정말 좋았다"며 "따뜻하고 감동적인 공연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학원 강사 최 모(33) 씨는 "느리게 전개되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였다며 "주인공의 감정 변화에 공감하며 봤다"고 말했다.
한윤창 기자 storm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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