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호국영웅 고 김재권 일병 안장식이 진행됐다. |
지난 22일 6·25 전쟁 당시 국군 북진을 위한 공병작전을 펼치다 전사한 호국 영웅인 고(故) 김재권 일병의 유일한 혈육인 김성택(68) 씨는 "아버지의 유해를 이제라도 만나볼 수 있어 감사하다"며 "당시 전쟁에서 숨진 26살의 아버지를 68살인 내가 만나는 감격의 순간"이라고 말했다. 이날 김재권 일병의 안장식이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렸다. 안장식엔 유족과 장병, 보훈단체 회원, 시민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안장식은 묵념과 조사 낭독, 종교의식, 헌화, 분향 등의 순으로 최고 예우를 갖춰 진행됐다.
구홍모 육군 참모차장은 조사를 통해 "호국 영웅의 값진 희생은 유족들과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가슴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며 "육군 장병은 선배님의 숭고한 애국심과 고귀한 희생정신을 본받아 더 자유롭고 강건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는 데 신명을 바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924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난 김재권 일병은 6·25 전쟁이 발발한 1950년 결혼 2년 차를 맞고 있었다. 당시 아내 전옥순 씨의 뱃속엔 김성택 씨가 있었다.
김 일병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목재소에서 일하고 있었고, 숙부가 제주도 목재소 부지를 군부대에서 무상 제공한 덕에 입대하지 않아도 됐지만, 조국수호의 열정으로 1950년 8월께 자원입대했다. 제주도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은 김 일병은 9월 제1201 건설공병단으로 전입하게 됐다. 이어 1950년 아군의 신속한 기동을 지원하는 공병작전에 참여했다.
김 일병은 10월 15일 경기 가평에서 작전을 수행하다 북한군 비정규 요원으로부터 공격을 당해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유해는 그로부터 58년이 지난 2008년 5월 가평 북만 적목리에서 발굴됐다. 유품이 없는 데다 유가족 유전자 정보가 없어 한동안 이름없는 유해로 남았다. 그러다 지난해 아들 유전자 정보를 통해 극적으로 신원이 확인됐다.
아들 김성택 씨는 "아버님의 얼굴은 오직 사진만으로 봤고, 그동안 실체 없는 아버지였다"며 "유해가 일치됐다는 연락을 받았을 땐 나도 이제 아버지가 있었다는 사실에 감격스러웠다"고 말끝을 흐렸다. 그는 "과부의 자식으로 계속 살아왔는데, 남과 싸웠을 때 때리면 때린다고 욕먹고 맞으면 맞는다고 욕먹으며 아버지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살아왔다"며 당시를 소회 했다. 김성택 씨는 26살의 청년이 68살의 아들을 만났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제라도 아버님의 유해를 만날 수 있어 육군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며 "앞으로도 굳건한 안보태세를 바탕으로 전쟁 없는 평화의 시대가 지속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방원기 기자 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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