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토크콘서트에서 왼쪽부터 배우 이종국 씨, 연출가 진규태 씨, 사회자 이여진 씨. |
배우와 연출가로 직역은 달랐지만 두 원로는 힘든 여건 속에서 연극 활동을 해왔다. 자기소개에서 이 씨는 "나는 연극을 하며 두 여인을 울린 나쁜 남자"라며 "연극배우가 되겠다는 얘기에 어머니가 피눈물을 흘리셨고, 연극인 남편을 뒷바라지 하느라 아내가 피땀을 흘렸다"고 말했다. 사회자가 안타까워하자 객석에 있던 이 씨의 부인은 옅은 미소를 보이기도 했다. 연출의 경우도 상황이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진 씨는 "연극 시작할 때가 1963년인데 집에서 반대가 심했다"며 "연극에 몰두하다보니 가정상황이 안 좋아지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지역 연극인으로 자리를 지켜온 이유에 대해 이 씨와 진 씨 모두 애정을 들었다. 이 씨는 "손진책 등 대학동기들이 서울로 올라갈 때도 나는 대전을 지켰다"며 "대전 연극 발전을 지키는 게 내 책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손진책 연출가가 서울 연극계로 올 것을 거듭 권유했지만 이 씨는 한사코 거절했다고 한다. 진 씨는 "연극을 하면서 정말 후회를 많이 하기도 했다"면서 "그런데 후회를 하면서도 연극에서 떨어질 수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진 씨는 "연극을 시작할 당시 대전 연극이 불모지였다"며 "대전 연극을 발전시키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평생 지식과 재주를 다했다"고 말했다.
지역 연극계 대선배로서 후배에게 들려주는 조언도 토크콘서트 도중 나왔다. 지역 연극인으로 사는 게 쉽진 않다고 운을 뗀 진 씨는 "아무리 험한 산도 매일 가다 보면 길이 생긴다"며 "공부하고 자신의 숨겨진 내면을 찾아가다 보면 살 길이 생긴다"고 희망을 전했다. 이 씨는 "누구나 배우가 될 자질은 있지만 얼마나 인내하고 노력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며 "배우라면 화술과 인성을 소양으로 갖춰야 한다"고 자신의 연기론을 소개했다.
대전 소재 극단 새벽의 배우 이여진 씨가 사회를 맡은 이날 토크콘서트에서는 가족 같은 친근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무대가 정리된 뒤에도 두 원로와 객석에 있던 후배 연극인들은 오랫동안 담소를 나눴다. 사회자 이여진 씨는 "항상 두 분 선생님이 우리 지역에 계셔서 든든하다"며 "앞으로도 우리 후배 연극인들에게 많은 조언을 들려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윤창 기자 storm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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