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위암으로 개복수술 후, 17차례 항암주사를 맞았습니다. 주위에서 보고 들은 바, 그렇게 많이 주사 맞은 사례가 없더군요. 한 번 주사 맞으면 일주일여에 걸쳐 체력이 떨어집니다. 밑바닥으로 떨어진 체력이 회복될라치면 다시 불러 주사를 놓더군요. 3박 4일간 입원해 맞았습니다. 그렇게 반복하여 맞다보니 암 진단 후 10여 개월이 지났습니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참 고역이었어요. 당시, 상태가 좋다가도 병원 문 들어서면 심리적으로 몸이 노곤해지고 더 아파오더군요. 몇 개월 지나다 보니 주위로부터 관심도 멀어지고, 홀로 퇴원 할 때면 몹시 쓸쓸하고 외로웠습니다. 그렇게 주사가 끝난 후 4년 3개월 동안 면역강화 제를 포함한 항암 약을 먹었습니다. 면역력이 떨어지다 보니 중간 중간 여러 가지 다른 약도 함께 먹었지요. 꽤 오랜 동안 병원 신세를 졌습니다.
특별히, 남보다 상태가 더 좋지 못하거나 예후가 나쁘지도 않은 것 같은데, 꽤 오랜 시간 치료했습니다. 때때로 궁금하긴 했지만, 어떤 이유가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굳이 알려 하지 않았습니다. 꼭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수술 받지도 않았으니까요.
수술 이후 관리도 별나다 싶거나 내세울 것이 없군요. 틈나는 대로 운동했습니다. 음식은 혈액순환에 좋다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것 위주로 먹었습니다. 잡곡밥에 된장, 청국장, 부추, 파, 마늘, 양파, 양배추, 블루콜리, 해조류와 생선 등을 반찬으로, 하루에 과일 한 두개 먹었습니다.
환자와 치료하는 사람, 주변 사람 입장이 서로 다르겠지요. 의료계 종사자들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겠으나, 동병상린同病相燐이랄까, 많은 환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들로부터 진지하고 진솔한 수많은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었답니다. 자주 언급하는 말입니다만, 매사가 같은 입장이 아니면 공감이 어렵지요. 아파보니, 전과 달리 마음에 와 닿고 공감이 되더군요. 뿐만 아니라, 간절한 마음으로 건강공부도 하게 되더군요. 돌이켜 보니 병과 관련하여 몇 가지 집히는 것이 있습니다.
필자는 진단받자마자 입원하고, 사나흘 후 수술 받았습니다. 막상 죽음이 다가왔다 선고 받자 머리가 하해 지더군요. 저절로 비워지더란 말입니다. 잘 못 살아온 탓이겠으나, 정리할 일이나 물건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도 놀랐습니다.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구나, 의미 없는 일이었구나, 생각되더군요. 이 세상에 소풍 왔다 돌아간다는 천상병(千祥炳, 1930~1993, 시인, 평론가)시인의 시 '귀천'이 생각났습니다. 그렇다고 허무주의자가 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삶의 의미는 일하는데 있다 생각하지요, 더불어 즐겁게 말입니다. 다만, 집착할 필요는 없다 생각하지요. 반성되는 하나, 열심히 살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더 산다면 열심히 살아보자 생각했지요.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아는 귀한 시간이기도 하였지요. 서로를 이해하고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배려하고 보답하며 살자 다짐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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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 고통 못지않게 두려워해야 할 일이 절망입니다. 마음을 잃거나, 마음에 상처를 받는 것을 상심이라 하지요. 상심이 곧 병이 된다 느꼈습니다. 많은 암환자들이 심적 고통을 비롯한 상심 후 병을 얻었더군요. 화병, 불면증, 만성 피로 등 스트레스성 질환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의학계에서도 만병의 근원이요, 건강의 적이 스트레스라 하더군요. 마음을 잃으면 그 빈자리를 병이 차고앉나 봅니다. 아름다운 마음 가꾸는 일이 건강을 지키는 비결 아닐까 생각되더군요.
마음이 곧 법이지요. 심즉리心卽理, 유학자이면서 불교에 심취했던 왕양명(王陽明, 1472 ~ 1529, 중국 철학자)의 말입니다. 마음 외에는 법이없다(心外無法), 마음이 곧 부처이다(心卽拂), 마음이 모든 것을 지어낸다(一切唯心造)는 불가의 말이기도 하지요. 같은 말일까요? 마음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투병 중에 다시 한 번 깨달았답니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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