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대표 예도의 창작극 '나르는 원더우먼' 공연 모습. |
매스미디어를 통해 꾸준히 복고 소재로 소비돼 온 70년대 여성 차장 이야기지만, '나르는 원더우먼'은 복고적 이미지에 기대지 않는다. 대신 작품은 어두운 현실을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차장이라는 직업적 계층이 처한 상황을 사실적으로 담아냄으로써 상업적 낭만성과는 일정 부분 거리를 둔다. 불편을 느끼게 할 정도로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묘사되는 부조리 현상들은 관객들에게 사회의 이면을 성찰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등장인물이 극중 실제 탈의를 하거나 강도 높은 폭력 연기를 선보이기도 하는데, 성찰적 비판의식을 바탕으로 한 리얼리티는 장면의 개연성을 담보하는 역할을 한다.
비판의식은 유난히 긴 대단원을 통해 지속적으로 강조된다. 70년대 차장에서 2008년 마트 판매원이 된 주인공 희숙이 여전히 갑질과 성희롱을 당하는 장면은 30년이 흘렀음에도 부조리한 사회 구조가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숱한 억압과 착취 아래서도 여전히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희숙은 평면적 인물로 남겨져 비극적 현실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그럼에도 창작자는 결말을 짓는 방식에서 여타의 사회비판극과 달리 냉소적 시선을 보내거나 비탄에 빠지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극중 갑질 상사에 대한 주인공의 통렬한 저항은 러닝타임 90분 동안 쌓인 공분(公憤)을 해소함과 동시에 창작자의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전달한다. 날지 못하고 승객을 '나르는' 차장이던 주인공은 이 땅에 발목 잡혀 사는 현실을 대변하지만, 마지막에 '원더우먼'이 된 주인공은 역경을 딛고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의지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날 공연은 오후 7시 30분 기준으로 120여 명이 찾았다. 관객들은 서사의 리얼리티와 배우의 열연이 인상적이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스스로 연극인이라 밝힌 이 모(55) 씨는 "연극적 컨벤션을 주로 활용하면서도 사회 문제를 핍진하게 묘사한 수작이었다"고 평했다. 고등학교 교사 서 모(46) 씨는 "경남 대표 극단답게 사투리 연기가 인상적이었다"며 "네 배우가 열연해준 덕분에 뜻 깊은 무대가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윤창 기자 storm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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