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어느 새 출근하면 화분들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는데, 오늘은 며칠 전부터 꽃망울을 달고 있던 호야의 수줍은 만개(滿開) 인사를 받았다.
호야는 긴 가지 끝에서 꽃을 피우고 꽃이 진 자리에서 또 꽃이 달린다는 것을 강박적인 가위질을 하고 나서야 알았기 때문이다. 둘러보니 서너 개 있는 호접란도 나름의 색깔로 우아한 꽃을 피우고, 자리를 옮긴 붉은 제라늄도 묘하게 연해진 색깔로 계속 꽃을 피우며 적당한 자리에 놓였음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잘 나가는 이 작은 정원(?)에도 문제는 있었다. 몇 해 전 제자가 자그마한 화분에 심겨진 행복나무, 일명 Happy Tree를 가져왔는데 쑥쑥 잘 자라기에 큰 화분으로 분갈이를 해주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벌레가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잎사귀가 반짝반짝 빛나기에 물을 주고 난 뒤의 신선함으로 생각했는데, 실상은 벌레의 진액이었던 것이다. 화원에 가서 약을 사다 뿌려주기도 했지만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이름하여 행복나무인데 버리자니 마음에 걸리고, 이래 뵈도 화초를 좀 키우는 사람이라는 자존심도 건드려지는 것 같아서 제대로 살피기 시작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잎줄기를 따라 작은 벌레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그때부터 매일 잎을 살펴보고 끈끈한 진액도 닦아주고, 잎사귀를 앞뒤로 보며 잎줄기에 딱 달라 붙어있는 벌레도 잡아주었다. 얼마가 지나자 놀랍게도 잎이 무성해지면서 이제는 그 작은 화분에서 옮겨 심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크게 자라고 있다. 결국 행복나무를 지켰다, 아니 행복을 지켰다고나 할까. 매일 잎사귀 앞뒤를 살펴주며, 건강해진 상태를 보면서 문제없이 잘 자라는 화초나 꽃들 못지않은 만족감을 얻었으니 말이다. 별 것도 아닌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 행복감은 대단한 것으로부터 오는 게 아니다. 행복(幸福)의 핵심은 '주관적 안녕감'인데 안녕이란 엄청 큰 기쁨이거나 즐거움이라기보다는 잔잔한 평안함이다.
물론 '주관적'이기 때문에 그 기준은 사람마다 제각각이어서, 무엇에 행복을 느끼는지, 어떤 수준에서 느끼는지 다르다. 만약 엄청 높은 기준, 혹은 비현실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쉽사리 행복을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일상적인 행복감은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생명력이기 때문에 소소한 일에서도 행복을 발견하도록 해야 하겠다.
조용히, 그러나 꼼꼼히 나의 일상을, 마음을 들여다보자. 행복나무 잎줄기에 딱 달라붙어있던 벌레처럼 나의 행복감을 죽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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