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상징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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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상징과 의미

정용도 미술비평가

  • 승인 2018-06-18 10:55
  • 신문게재 2018-06-19 23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정용도
학교는 인간의 도덕적 훈련과 지적이고 정신적인 고양의 장소를 상징한다. 국회는 시민의 권리와 요구를 국가 운영에 반영시키는 민주주의의 상징이고, 국가는 국민의 복지와 보호를 담당하는 광의의 최종적인 공동체라는 상징성을 가진다. 그리고 이 모든 상징들이 의미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그 안에서 기능하는 구성원들의 행위가 일정한 수준에서 작용해야만 한다. 상징과 의미의 연결을 부정하는 것은 탐욕이 만들어내는 비상식적 행위들뿐이다. 기호학자들은 상징을 기표(signifier)와 기의(signified)로 나누어 상징적인 표지와 그것을 받아들여 인지하는 이해의 차원이 언제나 일정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라면'이 누군가에게는 출출한 배를 채워주는 간식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가난의 시간을 상기시키는 트라우마의 매개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기표는 일정하지만 기의는 사람들의 경험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발화된. 문화는 이런 차이들을 화해시키는 기능을 가진다. 그러나 문화적인 화해는 단순히 의미의 갈등적인 요소들을 해소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삶에 대한 욕망으로 인도하는 상상적인 환경, 즉 삶의 역동성의 장을 마련해줄 수 있는 것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의 축구 문화는 완전히 달라졌다. 당시 감독 히딩크는 축구 역시 선수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조직력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단지 축구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행위들에 대한 문화적 이해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사건이었다.

미술관의 경우 예술작품의 전시와 기타 예술 행사를 기반으로 작가와 관객, 그리고 지역의 주민들에게 시민적 정체성에 관해 생각하게 함으로써, 넓은 의미에서 예술의 치유적 기능을 수용해야 하고, 일반 대중들의 정서적 욕구에 대응하여 지속적으로 새로운 예술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시민들이 사회 환경에 대한 정서적 인식과 자신의 시민적 정체성을 연결시킬 수 있는 활기찬 상상력의 제공지가 되어야만 한다. 한국 사회에서 명절이 상징하는 것은 헤어져 있던 가족의 화합과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여전히 삶의 구체성을 실현하는 주인공들이라는 의미와 관련이 있다. 마찬가지로 미술관과 여타 예술기관들의 역할은 단순히 자본을 소비하는 행사의 개최가 아니라, 의미가 만들어질 수 있는 상징들을 생산하는 센터가 되어야만 한다. 즉, 생산된 상징들이 의미의 다양한 가능성들로 확장되고 종합되는 삶의 새로운 '분위기'(aura)들의 상상적 장소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빅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으로 대표되는 4차산업 시대에 문화 생산과 소비의 경계가 사라지고, 빅데이터의 근원지이자 집단지성을 상징하는 인터넷은 콘텐츠 생산의 원형(prototype)일 뿐만이 아니라,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루어짐으로써 소비가 곧 생산으로 연결되는 새로운 가치들의 접점을 만들어내고 있다. 결국 21세기에는 예술적 상상력의 '넓이'가 우리 삶의 문화적 진보성을 결정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오히려 의미의 차이들은 우리 삶과 삶의 상징들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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