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맑은데 땅은 온통 초록이 아닌 푸른색으로 뒤덮이면서 새날이 밝았다. 눈을 떠보니 전국의 지방 선거 결과가 온통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거기에 붉은 점 두 개를 찍어 짝퉁으로 기울어진 조화를 이루게 했다. 하나님께서는 이 푸른색 바탕에 왜 붉은 색 점 두 개를 찍어 어떤 그림을 그리려 했는지 궁금하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이번 싸움은 이념 싸움이 아니라 문재인 이름 대 보수꼴통들의 구태에 얽매인 정치 대결로 끝난 것이다. 청책 대결이 아닌 정치대결인 것이다.
이날 허태정 대전시장 당선자를 비롯해 대전의 6인방은 흰 와이셔츠에 감색 바지를 입고 국립 대전 현충원을 찾아 오른손 주먹을 치켜세웠다. 대전 시민을 위한다고 파이팅을 외쳐댄 것이다. 그러나 박용갑중구청장 당선자와 장종태 서구청장 당선자 두 사람 말고는 모두가 초년병들이다. 물론 허태정 시장은 유성 구청장 경험이 있다고는 하나 시장으로서의 경험은 전무(全無)한 상태다. 따라서 이들은 내세울 경험 없이 문재인 대통령 사진을 전면에 내세워 당선된 사람들이다. 이른바 호가호위(狐假虎威)에 의해 당선된 자들이다. 누가 이 초년병들을 견제하거나 길잡이를 해주겠는가? 견제할 야당이 있어야 하는데 야당 스스로가 자멸의 길로 갔기 때문이다. 누구를 원망하랴?
필자는 오랜 세월 여러 언론에 보수정치인을 지지하는 칼럼을 써 왔다. 그들이 새누리당 유니폼을 입고 있으면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칼럼을 썼고, 한국당 옷을 입고 있으면 한국당 지지하는 칼럼을 썼다.
지금부터 4년 전 새누리당 대전시당 책임자는 박용갑, 한현택 선수의 옷을 벗겨 민주당 옷으로 갈아입게 만들었다. 공천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용갑 청장은 누구인가?
그는 중구청장 재임 8년 동안 몸으로 뛰며 중구민들과 함께 했다. 언제나 중구민들이 있는 곳에 박용갑 청장이 있고, 박용갑 청장 있는 곳에 중구민들이 함께해 힘을 실어 줬다. 서구에 사는 필자도 보기가 좋았다. 그래서 이런 목민관을 본받게 하기 위해 내가 주필로 글을 쓰는 언론마다 띄워 다른 목민관들에게 귀감이 되게 한 바 있다.
보라, 이들 구민과 박용갑 청장과의 사이는 보이지 않는 끈끈한 신뢰로 이어진 사실을. 그래서 이번 6,13지방 선거에서 지방 선거 유사 이래 65.1%라는 사상 최고의 표를 박청장에게 밀어 준게 아니었나? 그는 본래 정치인 출신이 아니라는 걸 대전 시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잔머리 굴리지 않는 깨끗한 일꾼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는 재임 8년 동안 축록자 불견산(逐鹿者不見山)을 확실히 이행한 목민관이었던 것이다. 사슴을 쫓는 자가 어찌 산을 볼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해 박청장의 눈에는 중구민 외에 다른 권력도 명예도 보지도 않고, 보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지난 14일 더불어민주당 대전지역 광역·기초단체장 당선자들이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아 현충탑에 참배한 후 한 자리에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박용갑 중구청장, 황인호 동구청장, 허태정 대전시장, 박정현 대덕구청장, 장종태 서구청장, 정용래 유성구청장 당선자. 이성희 기자 token77@ |
세상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것에서 시작되고, 천하의 큰 일은 반드시 미세한 것에서 비롯된다는 말이다. 작은 것을 조심하고 미세한 것도 얕보지 말라는 말이다.
따라서 지역민들의 애환을 귀담아 듣기 바란다. 그들 두 목민관은 지역민들로부터 여하한 비난도 받지 않은 훌륭한 행정가들이다. 자신의 이욕에 따라 처신도 할 줄 모르며 약한자 등을 쳐 뒷주머니를 불린 목민관은 더더구나 아니고 그럴 사람도 아니다.
염홍철 전 대전시장은 선배로서 후배 시장에게 지남차(指南車)역할을 하기 위해 시장으로서의 해야 할 일을 권해주고 있다. 언론에 게재된 염 전 시장의 글을 요약해보자.
새 대전시장에게 바란다(도입부분 생략)
1, 공약은 실행해야 한다. 그러나 공약을 지키지 못하는 것보다 검증되지 않은 공약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이 더 큰 실책이다. 잘못된 공약을 실행하기 위해 시간과 인력의 낭비는 물론이고, 막대한 '매몰비용'이 발생한 것을 그동안 많이 보아왔다.
2, 낙선자들의 '좋은' 공약도 취합해서, 먼저 전문가 그룹의 꼼꼼한 검증을 받고, 담당 공무원들로부터 실현가능성과 예산 등의 검토를 거치면서 잘못된 공약은 과감히 버리라.
3, 다음 재선을 준비하지 말고, 10년 또는 20년 후 대전 발전을 위한 비전을 준비하라. 시민의 품격, 관용성, 사회적 자본 등은 경제 발전의 기본 요소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소홀하기 쉽다. 그러나 가시적 성과나 보여주기식 정책의 이면에 낭비적이고 저품격의 속성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4, '살기 좋은 도시'의 일반적인 특징은 인구가 늘어나는 것이다. 도시의 양적팽창과 '살기 좋은 도시'는 상관관계가 약하다. 이제는 질과 디테일이 중요해졌다. 아이들이 가고 싶은 곳, 쉽게 각종 생활체육시설에 접근하고, 공연·전시 등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곳, 안심하고 영유아를 맡길 수 있는 곳이 충분해야 한다. 그리고 거주 인구와 유동 인구를 늘리기 위해서는 세종시와 상생발전을 위해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공동으로 추진해야 한다.
5, 대전에는 아시아 1위 혁신대학인 KAIST를 비롯한 19개의 대학이 있다는 점은 엄청난 자산이다. 대학 하나가 작은 도시를 이루는 사례가 많이 있다. 이 자산을 살리고 활용해야 한다. 지역 대학으로부터 혁신경제와 기술 등을 이전 받고, 대학으로부터 발생하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인 지원과 특단의 협력 체계가 필요하다.
6, 시장은 시민의 대표가 아니다. 시청에는 3,500여 명의 공무원들이 근무하고 있는데, 시장은 시민의 봉사자인 공무원들의 '리더'다. 시장은 공무원들이 전문성과 시민을 위한 봉사 정신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착한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
7, 공무원들 보다 너무 빨리 가지 말고 반(半)걸음 정도만 앞서 가라. 시장은 공무원을 외부로부터 보호하고, 가족처럼 사랑하며, 동시에 권한과 책임을 함께 부여하여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공무원 개개인에게 공정해야 한다. 특히 시청 내외에 이른바 '비선실세'가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
8, 시장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시민들이 '우리 대전'에 대해 '자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대전은 정신적, 학문적, 종교적으로 뿌리 깊은 도시이다. 이미 조선의 정치와 사상을 주도했던 이른바 '호서사림'의 중심지가 바로 대전이고, 그 당시 전국적으로 대표적인 학자인 박팽년, 송준길, 송시열 등이 대전 사람들이다. 현재는 기술의 허브이며 세계적인 과학도시로써, 대덕의 원천기술을 통한 우리나라 경제를 선도하고 있으며, 세종시와 더불어 사실상 행정수도의 역할을 하고 있다. 각종 교육기관 등을 통해 시민들이 대전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염홍철 (제4, 8, 10대 대전광역시장)
염 전 시장의 글은 허태정 대전시장 당선자에게 보낸 메시지이지만 구청장 당선자들에게도 귀감이 되리라 본다. 이 경험을 거울삼아 살기 좋은 대전을 만들기 바란다.
김용복/ 극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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