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도 팔자가 있자면 경리단길은 돈이 붙을 운이었나 보다. 거리 입구에 있던 옛 육군중앙경리단은 국군재정관리단으로 통합돼 현재 연 17조원에 이르는 재정을 집행한다.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경리단길의 2015~2017년 임대료 상승률은 10.16%로 서울 평균인 1.73%의 6배에 달한다. 지난해 대로변 상가의 임대료는 월 250만~350만원 수준. 땅값 역시 국토교통부 '2018 표준지 공시지가'에 따르면 지난해보다 14.09%나 상승했다.
거리에 사람이 몰리고, 그만큼 가게도 장사가 잘 되니 건물주는 임대료를 올렸을 것이다. 유명해서 유명해지는 거라는 말처럼, 경리단길의 가게들도 입소문이 나면서부터는 '경리단길에 있어서' 비싼 몸이 됐다.
어느 날부터인가 비슷한 이름들이 SNS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서울에만도 망리단길, 송리단길, 공리단길이 있고 전국에는 수원 행리단길, 청주 운리단길, 경주 황리단길, 전주 객리단길, 인천 평리단길, 부산 전리단길, 대구 봉리단길, 김해 봉리단길, 광주 동리단길, 구미 금리단길, 창원 도리단길이 있다. 어느 '리단길'도 경리단처럼 원래 있던 이름에서 따온 건 아니다. 대구 봉리단길은 봉산문화거리고, 구미 금리단길은 금오산 올라가는 길, 인천 평리단길은 부평시장 뒷길 커튼골목이다. 부산 전리단길은 부산진구 전포 카페거리, 청주 운리단길은 청주고인쇄박물관에서 운천신봉동주민센터를 잇는 거리, 경주 황리단길은 황남동 내남네거리에서 남쪽 첨성로까지를 말한다. 돈이 붙는 그 거리의 팔자를 닮고 싶은 상가들의 마음과, 서울에 있다는 유명한 거리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사람들의 흥미가 그 거리에 뜻도 맞지 않는 '리단길'을 붙였을 것이다. 지자체도 SNS 홍보에 적절한 아이템으로 여겨, 공식 홍보채널에 언급하기도 한다. 비슷한 상가 거리들의 '워너비(wanna be)'로, 경리단길은 세상에 인식됐다.
그랬던 경리단길이 쇠락하고 있다. 권리금과 임대료가 오르자 초기 임차인들은 다른 상권을 찾아 떠나고, 상가 1층마저 빈 점포가 늘어나고 있다. 그래도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내리지 않고 버티고, 상인들만 권리금을 포기한다. 대부분의 건물이 너무 작아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들어오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떴으면 지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길의 팔자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임대료가 많이 오르지 않았다면, 이렇게 빨리 내리막을 향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경리단길을 닮고 싶어 했던 다른 리단길들도 이 몸살을 앓게 되지는 않을까. 이 걱정은 기우였으면 좋겠다.
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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