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석 본부장 |
상농은 흙을 잘 관리하고, 중농은 필요해서 어쩔 수 없이 하며, 하농은 필요해도 안 하고 내버려 둔다는 의미다. 상농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볼 줄 아는 지혜를 가진 농부라는 뜻이다. 이렇게 농사의 가장 기본은 '흙'을 가꾸는 데 있다.
하늘을 찌르는 거목도 썩으면 흙이 되고 영웅호걸도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 성서에 의하면 인간은 흙으로 빚었다는 말을 빌리지 않고도 우리 몸을 구성하는 기본물질이 흙의 성분과 같다고 해서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용어가 생겨난 것이다.
흙은 오곡백과를 생산해 인간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고 섬유를 만들어 우리의 신체를 보호하고 나무를 키워 우리의 삶을 마련해 준다. 우리가 살아 숨을 쉴 수 있는 것도 흙이 작물을 키워 산소를 생산해 주기 때문이다. 온갖 동물들이 쏟아내는 배설물과 쓰레기를 분해하여 우리의 환경을 깨끗이 정화해 주는 것도 흙이다. 땅을 구성하는 요소가 흙이다. 흙은 물질 또는 생물체의 분해물과 물로 구성된 작은 알갱이의 집합체인 반면, 땅은 다분히 개념적인 뜻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즉, 하늘(天)과 대립된 뜻의 온갖 사물이 존재한다는 의미와 일반적으로 경제성과 생산의 터전을 의미하는 소유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흙과 땅은 존재와 구성을, 그리고 인간의 경제적 소유성을 다분히 내포하는 상호관계가 있는 셈이다. 한편 '토지'라는 어휘는 일정한 구획을 가진 땅거죽 부분과 법률에서 정한 한도 안의 땅속을 생산, 특히 농업생산의 요소가 되는 특질로서 이르는 말로 사법상 소유권의 대상이 되는 땅의 부분적 구획을 말한다고 정의되어 있다.
우리 민족에게 흙이란 농토, 경제, 재산 그리고 소유를 의미하였다. 경제활동의 중심이자 생활의 터전이며 생명이 달린 곳이 흙이고 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인간에게 흙이 가지는 의미가 지대하여 흙을 밟아야 건강하고 탈 없이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흙은 인간사 기복의 대상인 동시에 재산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까닭에 흙을 쓸어버리면 복이 나간다고 여겨 마당을 쓸 때면 집 바깥에서 안쪽으로 쓸기도 하였다. 그래서 한 치의 땅을 얻기 위해 전쟁도 불사하였고 한 평의 땅을 더 얻는다는 것에 최선의 가치를 둔 것이었다.
그런데 이 흙은 주위 환경의 변화를 따라 움츠리기도 하고 늘어나기도 하며 물에 잠기면 환원되고 물이 마르면 산화되는 등 살아있음을 인간에게 보여준다. 흙은 사람과 같이 동적인 변화를 하는 자연체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흙은 중증의 '산성병'에 걸려 있다. 흙이 산성화되면 될수록 중금속을 포함한 해독성분의 독성이 커진다고 한다. 이 같은 독성물질 및 중금속은 흙 속에 침투하여 뿌리에 흡수되는 것이다. 흙이 산성화되면 토양생물의 활동을 약화시켜 유기물의 분해를 지연시키고 유기산을 만들어 흙의 산성을 더한다. 농약과 같은 유기성 독성분의 분해가 늦어지는 경우도 있다.
현대인의 걱정 중 하나가 안전하고 품질 좋은 무공해 농산물을 확보하는 일이다. 농약과 공장 오·폐수 물질 등에 따른 오염된 먹거리는 흙을 진단하여 건강하게 치료하고 퇴비 등 자연 비료를 시비하는 데서 얻어진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 땅의 흙이 살아나고 후손들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흙을 물려줄 수 있다. 건강한 흙을 가꿈으로써 우수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건강한 흙 만들기'는 농정의 최우선 정책이 되어야 함을 다시 한번 강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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