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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곡에서 본 금성산성/사진=조영연 |
성의 존재는 토박이 중 오직 정재영(71) 씨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구룡말이 있는 성의 동남벽 아래를 과거 성동리라 했다는 점도 마을 서쪽에 성이 있었음을 더욱 확실히 암시하여 준다. 마을(쇠골=금곡) 뒷산 정상에 오르면 잘록한 부분(안부)을 중심으로 지붕의 용마루처럼 양쪽이 치켜 올라가 용마루의 치미 비슷한 부분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정상부는 제법 평평하며 안부의 평탄지는 성 내부를 이룬다.
염치에서 곡교천 우안 624번 지방도로상 금성초등학교에서 서쪽으로 오륙백 미터 구룡말 뒷산(51m 정도 높이의 야산) 즉 현지명 당재산에 산성이 있다. 산성의 북벽에 해당하는 지점 즉 남양홍씨네 납골당이 자리한 쇠골마을 서북편의 끝자락 근처 작은 포구에 과거에는 방아개나루가 있어 배가 드나들었다 한다. 이제는 내륙으로 들어와 버린 이 나루터는 금성산성으로부터는 직선거리로 약 오륙백 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500여 미터 밖에 제방이 축조되어 육지 속에 들어 있으나 과거에는 바로 산 앞까지 천변이었으며 산성은 바로 천변에 위치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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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산성벽/사진=조영연 |
마안부를 가운데 두고 남북으로 선 작은 두 봉우리의 정상부 능선을 중심으로 성벽을 에워싼 테뫼식 토축산성으로 둘레는 약 이삼백m 정도 됨 직하다. 전체적으로 자연지형에 따라 삭토를 기본으로 했으며 북벽에 높이 5미터 정도로 길이 약 40m 가량이 남아 있는 일부에 성토가 뚜렷하고 안쪽은 흙을 파 올린 듯 내호처럼 형성돼 있다. 그 나머지 부분도 대체적으로 외벽을 삭토하여 경사지게 만들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일부의 성벽은 경작지 등으로 퇴락이 심해 성의 형태를 찾아볼 수 없으나 전체적 윤곽을 파악하기에는 어렵지 않다. 북봉부가 넓은 타원형으로 테뫼한 북벽으로 약간 배(腹)가 내밀고 남벽은 완만히 휘어진 배(舟)의 형상을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북봉 근처 쇠골쪽으로 돌출한 부분은 자연스레 치(치성)처럼 형성됐다. 성의 동쪽 입구와 서쪽 능선 입구는 기단으로부터 5, 6m이상 솟았고 두꺼우며 외벽은 둥그스럼하게 곡성으로 처리됐다. 남벽 아래는 구룡마을 민가가, 북편 쇠골쪽 성벽 아래는 남양홍씨 납골묘가 차지했으며 서봉에서는 완만한 경사면을 이루다가 해안(현재는 624번 도로)에서 도로 개설로 인해 급격한 낭떠러지를 이룬다. 그러나 당초에는 성으로부터 내려온 줄기가 좀더 완만하게 바다로 늘어졌을 것이다. 폭이 넓고 평탄한 성 내부에 건물지 같은 시설이 존재했을 것으로 보인다. 능선(동과 서)양쪽 입구의 곡성 처리된 부근에 있을 법한 문지들은 수풀에 덮여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정황상으로는 동서 양쪽편 마을과 통하는 지점과 구룡말에서 금곡으로 넘어다니는 고개와 연결되는 동봉 드나드는 곳에 문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정상부에서 회색경질토기편들이 수습됐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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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산성에서 내려다본 모습/사진=조영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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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산성에서 내려다본 모습/사진=조영연 |
성의 서쪽 곡성부에서는 현재 농지로 간척된 삽교천(삽교호) 및 그 주변 아산만과 연안은 물론 곡교천 어구, 남쪽 군덕리산성으로 연결되는 선인대교와 도로들, 북쪽 삽교천 방조제와 공세리 및 안성천 일대까지 모두 한눈에 조망된다.
서해에서 아산만으로 진입하는 삽교천과 그 동쪽 온양과 내륙으로 유입되는 지류 곡교천 수로를, 입구에서 맞은편 선장의 군덕리 산성과 함께 방비하는 것이 해안성으로서 이 성의 주된 임무였다. 규모가 크다거나 견고한 성은 아니지만 위치상 고대 서해를 통한 해상 교역과 문물 수입의 최첨단지로서의 아산만방어에 있어서 금성산성의 중요성을 상기할 수 있다. 관방상으로는 마한시대 그리고 삼국시대 백제의 영토 확장이나 부흥군 활동 과정에서부터 조선시대, 구한말 청일전쟁은 물론 6.25 등 현대까지 서해와 국경 방어에 있어서 큰 구실을 했다.
성의 서북쪽 쇠골(행정지명 금곡리)과 구룡말(행정지명 성동리)이 행정구역 개편시 통합되면서 한 자씩 따서 금성리로 변경됐다는 사실, 과거 이곳은 이웃 공세리와 더불어 천안에 속해 천안부에서 세금을 걷어 갔다는 사실, 구룡말 동쪽에 창말이 있다는 사실 등 잊혀져 가는 중요한 증언들을 청취했다. 창안말은 과거 아산, 천안 지역에서 모인 세곡들을 보관했던 창이 있었음을 말하며 그의 관리와 연관된 금성리산성의 위상과 역할을 상기시켜 준다.
현재 산성 앞 삽교천 아산만에는 현대자동차 공장이 가득 들어차 있어 산업적 기여도가 큰 지역이기도 하다. 한낮 햇빛에 반사되는, 끝없이 전개되는 잔잔한 바다가 하얀 은박지 펼쳐 놓은 듯하다. 잠시 후면 그도 황금판으로 변할 것이다.
조영연 / '시간따라 길따라 다시 밟는 산성과 백제 뒷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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