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희 음악평론가.백석문화대 교수 |
우선 첫 곡 베토벤 서곡에서 지휘자 바메르트는 서두르지 않고 고전음악이 지닌 견고함과 균형감 위에 베토벤 음악 특유의 리듬감을 살려나갔다. 후반부 차이콥스키 협주곡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콜야 블라허(K. Blacher)가 들려준 원숙한 울림과 예리하고 정확한 연주력은 불꽃같이 번쩍이는 화려함이나 폭발하는 감정선에 기대지 않은 이지적인 차이콥스키 음악으로 드러났다. 오케스트라와 빠르게 움직이는 부분에서 다소 테크닉이 느려지기는 했어도 블라허와 대전시향은 차이콥스키 협주곡이 지닌 낭만적 정서를 매끈하게 선보였다.
이날 연주의 가장 큰 관심사는 아르드 쇤베르크(A. Schoenberg 1874~1951) 교향시였다. 전통을 딛고 새로운 혁신의 길을 걸은 쇤베르크는 작품의 연주 빈도수는 적지만 조성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음악을 창작한 음악가로 더 유명하다.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완전한 탈조성으로 작곡된 음악이 아닌 조성과 비조성의 경계에서 낭만적인 분위기와 반음계적인 불협화가 뒤섞여있다. 원작인 메테를링크 희곡에 쇤베르크뿐 아니라 작곡가 포레, 시벨리우스, 드뷔시도 음악을 붙였을 정도로 작품이 지닌 극적 비극과 판타지는 강렬하다. 궁정에서 미스테리한 여성을 둘러싼 두 형제의 삼각관계, 사랑과 복수, 죽음이 표출하는 음악은 신비롭고 몽환적이며 강렬한 색채감을 지닐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음악으로 이야기를 풀어간 교향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작의 서사 구조를 알아야 한다. 대전시향이 음악의 흐름에 따라 자막을 비교적 상세히 적었기에 객석에서도 처음 듣는 긴 곡을 끝까지 집중해서 들을 수 있었다. 음산한 분위기 음색은 언제 들리는지, 사랑이 싹틀 때 왜 음향이 격렬하게 바뀌는지, 음악이 느려지고 빨라지는 이유, 절망의 깊이가 커질수록 장엄하고 풍성한 울림은 오로지 가사의 의미를 파악할 때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음악과 문학의 결합으로 대전시향은 대전 초연이자 어려운 쇤베르크 교향시를 성공적으로 무대에 올릴 수 있었다. 처음이기에 무대와 객석 양쪽에서 난해함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향후 주요 레퍼토리로 자리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오지희 음악평론가·백석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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