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진 경제과학부장 |
비록 실패했지만, 재상의 나라는 시스템 중심의 정치체계라 할 수 있다. 세습되는 왕조국가에선 성종이나 정조 등 훌륭한 임금도 많다.
하지만 연산군처럼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망동을 일삼는 이들도 적지 않다. 임금 하나 때문에 수많은 인재가 숙청되거나 흩어지면서 나라의 근간이 흔들렸다.
조선이 삼봉의 뜻대로 자질과 능력, 품성을 갖춘 인재를 중히 여기는 재상의 나라를 제대로 실현했다면 아마 지금의 대한민국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재상의 나라는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탄탄한 시스템을 갖춘, 당대에선 획기적인 제도였다고 볼 수 있다.
재벌들의 ‘갑질’ 뉴스는 끊이지 않는다. 족벌 경영 때문이다. 물론 사회의 귀감이 될 정도로 훌륭한 ‘가족 경영’도 많다. 자질과 품성, 능력을 갖춘 자녀와 친인척 등을 경영의 핵심에 중용하는 건 회사와 임직원은 물론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그러나 만약 그 반대라면 치명적이다. 최근 한진그룹 족벌경영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책임과 의무가 더 큰 ‘특권’을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을 짓밟는 무기로 휘두른 재벌들을 모셔야 하는 임직원들의 처지가 딱할 정도다. 역시 시스템의 부재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가면을 쓴 채 자신의 회사를 향해 시위하는 임직원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지역의 권력을 뽑는 6·13 지방선거가 일주일 남았다.
당선자는 전임자의 흔적을 어떻게든 지우려 할 것이다. 전임자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쌓은 브랜드는 금기가 되고, 전임자와 함께 호흡을 맞췄던 공무원들 또한 뒷전으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2002년부터 대전시의 권력은 4년마다 바뀌었다. 이번 선거 역시 전임 시장이 낙마해 다른 인물이 등극한다.
권력이 교체될 때마다 숱한 논란이 많았다. 전임자의 브랜드 사업은 초라하게 축소됐고 대전의 미래를 좌우할 사업은 논란만 키운 채 갈피를 잡지 못했다.
수많은 시민의 의견과 전문가의 검토 등을 거쳐 완성한 현안사업, 수장이 아니라 시민을 위해 열심히 일한 선량한 공무원들이 피해를 보는 일은 이제 지양할 때가 됐다.
새로운 권력자가 등장했다고 모든 걸 새롭게 바꿀 필요는 없다. 물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고 하지만, 바꿔서 손해 보는 건 바꿀 수 없게 만들 필요가 있다. 아무리 길어야 12년밖에 머물지 못하는 권력자를 위해 근간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
결국 시스템이 핵심이다.
오랫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지혜가 쌓이고 쌓여 구축한 시스템은 어느 조직에서나 중요하다. 특정인 하나 때문에 흔들리는 조직은 오래가지 못한다. 계승하면서 발전 방안을 고민하지 않고 독단과 독선을 고집한다면 지지를 받을 수 없다.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적 기능을 가진 집단일수록 더 그렇다. 사욕과 아집을 내세울수록 구성원들의 지지와 엄호는 멀어진다. 역사는 지지받지 못하는 리더십을 발악이라고 기억하고 기록한다. 시스템이 중요한 이유다.
윤희진 경제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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