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아사엘, 네프탈리 세 출연자는 우리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체험한 것 같았다. 나에게는 익숙한 풍경이 다른 문화 속에서 자라온 사람들 눈에 색다르게 비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광장시장에서 서툴지만 열심히 의사소통하는 모습도, 무한리필 고깃집에서 이른바 '먹방 대결'을 펼치며 젓가락 대신 가위를 사용하는 모습도 유쾌해 보였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바로 지하철 타기였다. 본격적으로 여행에 나선 세 출연자는 지하철에 탑승했다. 이 중 아사엘은 출입문과 가장 가까운 임신부 배려석에 앉았다. 이를 본 안토니오와 네프탈리는 "하트 표시가 있다"며 이 사실을 친구에게 알렸다. 고향에 지하철이 없어 임신부 배려석을 몰랐던 것이다. 그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이고 우리나라 지하철을 처음 타봤으니 그가 임신부 배려석에 앉은 것은 명백한 실수였다. 하지만 목까지 새빨개지며 임신부 배려석에 앉은 것을 창피해하는 모습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출퇴근, 등하교 시간에는 늘 지하철이 붐빈다.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직장인, 학업 스트레스에 고통 받는 학생 등 지친 몸을 편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굴뚝같다. 하지만 우리 지하철을 보면 성별을 막론하고 '도저히 임신부일 수 없는' 사람들도 마치 일반 좌석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앉아있는 모습이 심심찮게 보인다. 대전 지하철 임신부 배려석의 마스코트인 곰 인형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일그러져 있는 광경은 안타깝기 짝이 없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담임선생님께서 아기를 가지셨다. 다른 선생님들께서는 "임신 4~5개월까지는 표가 잘 안 난다"며 "특히 주의해야 하는 시기니까 담임선생님 말씀 잘 들으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정말이었다. 배 속에 아기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표가 안 났다. 실제로 대부분의 임신부가 초기에는 신체 외형적인 변화가 많지 않다고 한다. 이런 점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양보 받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인터넷에 임신부 배려석을 검색해보면 임산부 배지를 보고도 눈을 감는 사람, 만삭인 상태를 보고도 휴대전화로 시선을 돌리는 사람 등 양심 불량 사례가 잔뜩 나온다. 임신부임에도 배려석을 양보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아프다. 애초에 임산부 배려석은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앉지 말아야 한다. 곰돌이가 숨 쉴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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