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원 박사 |
히틀러와 불가침조약을 맺은 소련의 외무상 몰로토프. 훗날 독소전쟁이 발발하면서 불가침조약은 서로에게 헛된 휴짓조각으로 변했다. 서로가 상대의 속셈을 알면서도 불가침조약을 체결한 결과다. 잠재적 적군임을 알면서도 쌍방이 우호국처럼 행세했지만, 그 결과 세계사에 유례없는 잔혹함과 불행으로 막을 내렸다. 몰로토프 칵테일은 속칭 화염병으로 불린다. 핀란드인이 자국을 공격한 소련군에 맞서 저항의 화염병을 던지면서 생겨난 별칭이다.
몰로토프 칵테일의 또 다른 일화. 2차 대전 직후, 승전국들이 외상회담을 할 때였다. 일본 항복을 끌어냈던 원자폭탄의 위력이 화제였던 시기다. 몰로토프는 미국의 위세에 자존심도 상했고 열등의식이 강했다. 회담이 끝나고 만찬 자리에서 자존심이 상한 몰로토프는 만취했다. 몰로토프는 "우리도 원자폭탄을 가지고 있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다들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종전과 함께 원자폭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첩보전이 치열할 때였다.
몰로토프는 자신의 "술잔을 들고 이게 원자폭탄이다"라고 소리쳤다. 보좌진이 술 취한 몰로토프를 허둥지둥 끌고 나갔다. 상황은 그때부터 이상하게 흘러갔다. 정말 소련이 원자폭탄을 확보한 것일까. 술 취한 김에 진실이 나온다더니, 정말 소련이 원자폭탄을 가졌을까. 몰로토프 칵테일이 서방 3국의 첩보망을 바쁘게 만들었다. 결국은 소련은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했고, 미국과 겨루는 강대국으로 냉전체제를 주도했다. 몰로토프 칵테일은 국제사회에서 열외된 국가가 행하는 핵폭탄 보유 선언으로 불릴 만하다.
김정은이 지닌 몰로토프 칵테일은 저항의 화염병이 아니다. 그렇다고 허구도 아니고 핵 보유 여부를 국제사회에서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단지 검증 여부에 따라 그 위력과 실체가 드러날 것이다. 미국과 북한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바쁘게 움직인다. 무슨 카드를 들고 서로에게 흥정하는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간헐적으로 나오는 이슈 정도만 매체를 통해 알려지고 있다.
미모사 신드롬은 미모사처럼 외부의 충격에 움츠러드는 현상이다. 미모사 신드롬이 우리 사회에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우파진영에선 북미-남북 간의 급변사태에 왠지 움츠러드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한반도 프레임의 변화가 갑작스럽게 닥쳐오자, 어쩔 줄 모르는 것 같다. 좌파진영에선 연일 샴페인을 터트리며 환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형국이다. 청와대와 야당은 남북관계 관련 정보마저 교류하지 않고 있기에, 미모사 신드롬은 더 확산될 기미다. 물론 진행 중인 사안이라 철저한 보안이 필요하겠지만, 정부는 국회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야 마땅하다. 국민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알 길이 없다.
남북 정상이 다시 만났지만, 그 배경과 결과도 모호하다. 두 사람이 무슨 밀담을 나눈 것인지. 뭐가 그리 긴박해서 꼭 만나야만 했는지. 이에 대한 주변국과 미국의 반응도 제각각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미모사 증후군의 기세가 쉽게 누그러질 것 같지 않다. DJ 연정이 무너지는 데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해임이 기폭제가 되었다. 청와대가 연정 대상에게 남북회담과 관련 정보를 움켜쥐고 있으니, 말이 연정이지 연정 대상은 정보공유와 대책협의에서 철저히 배제당했다. 훗날 DJ 정권은 '대북 퍼주기'의 오명을 홀로 감내해야 했다.
작금의 상황은 어떤가. 청와대와 여당이 머리를 맞대고 숙의하는 모습도 안 보인다. 하물며 야당들과 정보공유와 대책협의는 언감생심이다. 청와대 내 소수의 인적자원이 좌지우지하는 꼴이다. 비핵화와 핵 폐기, 종전과 평화협정, 그리고 더 나아가서 불가침조약 등은 남북한이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중대사안이다. 민족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한 사안임에도 정치권과 언론마저도 방향타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온통 가짜뉴스와 선동성 정보만 난무한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은 얼마나 속은 타들어 간다.
/서준원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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