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소경이 돼서라도 보고픈 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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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소경이 돼서라도 보고픈 임아!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 승인 2018-06-01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바릿밥 남 주시고 잡숫느니 찬 것이며,

두둑히 다 입히고 겨울이라 엷은 옷을

솜치마 좋다시더니 보공(補空)되고 말아라.

퇴임 2년 전 5월 8일 3교시 국어 시간에 수업한 작품이다. 어버이날이어서 특별히 교화학습 목적으로 택한 것이 정인보 선생님의 <자모사>였다. 똘똘한 두 녀석에게 낭송 후 해석 감상을 통하여 느낀 점을 말해보라 했다.



『놋쇠로 만든 밥그릇의 따뜻한 밥은 아들한테 주시고 당신께서는 차가운 것을 잡수시며, 어머니께서 입었던 옷은 벗어 아들에게 두둑히 다 입히시고 당신께서는 입을 옷이 없어 겨울인데도 엷은 옷을. 별것도 아닌 솜치마 좋다고 그렇게 아끼시더니 입도 못하고 돌아가시어 관의 빈 공간을 채우는 옷가지가 되고 말았구나.』

불현듯 못살던 시절에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자식들 챙기느라 늘 잡숫지도 못하시고 허술한 차림만으로 사셨던 어머니 얘기 그대로였다. 눈물이 어룽어룽 뺨을 적셨다. 가난한 살림에 7남매의 뒷바라지만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세월 속에 무뎌졌진 상처가 금시에 가슴을 저미어왔다. 아니, 아픔으로 되살아났다. 겨우살이 주식이 되다시피 한 고구마 통가리가 떠올랐다. 벌건 고구마로 곡물을 대신한 어머니 진지그릇이 떠올랐다. 말이 밥이지 그것은 밥사발이 아니었다. 사분의 삼 정도가 짓이긴 고구마 누드 장(場)이었다. 그 위에 듬성듬성 붙어 있는 보리 알갱이의 은신처가 바로 어머니 진지 그릇이었다.

돌아가신 어머니 얼굴이 나를 견디기 어렵게 했다. 텃밭 김매기로 그을린 어머니의 일그러진 얼굴이 떠올랐다. 동생 30리 통학길 늦지 않게 새벽밥 지으시다 쓰러지신 어머니 모습이 되살아났다. 세간에선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하지만 나에게는 5월이 대신한 지 오래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어버이날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지울 수 없는 어머니 생각에 고향의 산으로 갔다. 거기엔 어머니 모습도 음성도 없었으나 어머니 곁이라는 생각에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봉분의 풀을 쥐어뜯으며 후련할 정도로 눈물을 짜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시간을 두고 어머니 대리만족할 궁리를 했다. 며칠 동안 고심을 하다가 홍성 살고 계신 외삼촌댁 갈 욕심으로 승용차에 시동을 걸었다. 어머니 혈육인 외삼촌을 뵙고 대리만족을 하기 위해서였다. 조수석엔 사랑하는 아내가 말벗을 해 주어 운전이 졸리지 않았다. 쇠고기 두 근에 과일 한 상자, 거기에 아내와의 마음을 담은 용돈 봉투가 어머니 닮은 분의 손에 쥐어드렸다. 어머니 생각이 간절해서 어머니 꼭 닮은 외삼촌 뵈러 왔다는 얘기를 했다. 가섭의 염화미소(拈華微笑)가 작용했던지 서로 옷자락을 붙들고 마냥 울었다. 지켜보던 아내도 힘들고 어렵게 보였던지 뺨을 적시는 눈물로 도와주었다.

매정한 세월은 붙들 수가 없었다. 곁을 지키던 아내가 떠나간 지 벌써 다섯 해나 뒤로했다. 세월이 약이란 말처럼 쓰라린 상처가 세월 가면 무뎌질 줄 알았는데 나에게는 예외였다.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눈물로 얼룩진 세월의 그림자를 만들어 놓았다. 아들 장가보낼 때에도 그랬고, 딸 시집보낼 때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은 경사가 있는 날에는 즐거움보다 걱정 두려움이 앞선다.

며느리 감 만나는 상견례 자리애서 아들 짝이 될 그 해어화(解語花) 한 송이를 부여잡고 마냥 좋아하던 그 아내가 지금도 눈에 밟히는 듯하다. 아니, 그 꽃을 보듬어 안아주던 그림 같던 그 장면이 두고두고 나를 울린다. 묻어나올 듯한 모나리자 미소를 지어가며 보듬고 있는 그 꽃을 그렇게 예뻐하며 사랑스러움 주체 못하던 아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내의 기쁨은 축복으로 이어져야 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은 그렇지를 못했다.

경인년 9월 27일 하늘이 무너지고 땅까지 꺼져버렸기 때문이다. 그해 12월 12일, 아내가 보듬어 안아주던 그 꽃이 며느리가 되던 그 좋은 자리에 나는 하객 인사에 눈물로 응답을 했다. 다음 해 10월 9일의 사위를 보는 그 좋은 자리에서도 눈물세례로 혼주 인사를 대신했다. 두 눈으로 보는 아픔도 이러한데 면사포 쓴 며느리 모습 못 보고 가는 그 마음이야 어떠했을까…….

12월 12일 그 좋은 날, 그까짓 두 달 보름 못 참고 떠나는 어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순간의 불현듯이 아니라 각인된 아내의 얼굴이 보고픔으로 괴롭힌다. 꿈에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은데 인색하게도 그걸 허락하질 않는다. 곁에 있을 때도 요조숙녀라고 칭송받더니 유명을 달리한 그곳에서도 ' 역시나 ' 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에서라도 여한 없는 얼굴 한 번 보여주면 울보 서방님 더 힘들고 마음 아파해서였을까!!!'

동고동락 (同苦同樂)의 36년 세월 속에서도 헤아리지 못했던 아내의 배려와 교양이 한숨으로 각인되었다. 아니 감당하기 어려운 보고픔으로 그리움으로 어렵게 하고 있다.

마음에 와 닿는 노산 이은상 선생님의 양장 시조를 놓치고 싶지 않다.

『뵈오려 안 뵈는 임 눈감으니 보이시네.

감아야 보이신다면 소경되어 지이다.』

감아야 보이는 임이시라면 이젠 누구를 보고 살아야 하나……!!

남상선수필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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