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금수회의록』 다시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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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금수회의록』 다시 보니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18-06-30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금수회의록
『금수회의록』 내용은 대략 알지만, 정작 소설을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아 보여요. 어린 시절 읽었다 해도 내용이 크게 마음에 와 닿지 않았겠지요. 만사가 견문과 안목에 따라 내용이 달라 보이니까요. 저자 안국선이(安國善, 1854 ~ 1926)계몽운동에 열중이던 1908년 출판한 소설인데요. 우리가 공부하던 당시엔 획기적이고 뛰어난 신소설이라 배웠지요. 표절이라거나, 번안 소설 아니냐는 등 시비가 있어오다, 저자의 친일행적이 드러나면서 이제 외면당한다 하더군요.

우리 문학의 흐름에 대한 자료를 살피다가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짐승을 등장시켜 당대 타락한 인간사회를 비판하고 규탄하는 내용입니다. 대부분 알고 있는 사자성어에 해당 짐승과 사회상을 절묘하게 연관시켜 신랄하게 비판하지요. 당시 사회현상이 100년 넘은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읽으며, 마치 필자를 꾸짖듯 하여 오금이 저렸습니다.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먼저 사회자가 개회사를 합니다. "외국 사람에게 아첨하여 벼슬만 하려하고, 제 나라가 다 망하든지 제 동포가 다 죽든지 불고(不顧)하는 역적놈도 있으며, 임금을 속이고 백성을 해롭게 하여 나랏일을 결딴내는 소인놈도 있으며, 부모는 자식을 사랑치 아니하고, 자식은 부모를 효도로 섬기지 아니하며 형제간에 재물로 인연하여 골육상잔(骨肉相殘)하기를 일삼고, 부부간에 음란한 생각으로 화목지 아니한 사람이 많으니, 이 같은 인류에게 좋은 영혼과 제일 귀하다 하는 특권을 줄 것이 무엇이오."

효도의 상징 반포지효(反哺之孝) 까마귀가 연설합니다. "까마귀의 족속은 먹을 것을 물고 돌아와서 어버이를 기르며 효성을 극진히 하여 망극한 은혜를 갚아서 하느님이 정하신 본분을 지키어 자자손손이 천만 대를 내려가도록 가법(家法)을 변치 아니하는 고로……"라며 허튼 일로 세월을 낭비하면서 부모를 섬기지 않는 것을 나무랍니다.



이어서 호랑이의 위엄을 빌려 모든 짐승으로 하여금 두렵게 했다는 여우가 등장, 호가호위(狐假虎威)는 속임수가 아니라 살기위한 수단이요, 진정 요망하고 간사한 것은 여우가 아니라 사람이라며, "저희들은 서로 여우같다 하여도 가만히 듣고 있으되, 만일 우리더러 사람 같다 하면 우리는 그 이름이 더러워서 아니 받겠소."라고 힐난합니다.

정화어해(井蛙語海) 개구리는 제 분수 모르고 허장성세(虛張聲勢) 하는 사람 모습을 비난합니다. 벼슬아치들에게 "권문세가에 아첨하러 다니기와, 백성을 잡아다가 주리 틀고 돈 빼앗기와 무슨 일을 당하면 청촉 듣고 뇌물 받기와 나랏돈 도적질하기와 인민의 고혈을 빨아먹기로 종사하니, 날더러 도적놈 잡으라 하면 벼슬하는 관인들은 거반 다 감옥서 감이오"라고 경고합니다.

이번엔 구밀복검(口蜜腹劒) 벌이 나섭니다. "입에 꿀이 있고 배에 칼이 있다 하나 우리 입의 꿀은 남을 꾀이려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양식을 만드는 것이요, 우리 배의 칼은 남을 공연히 쏘거나 찌르는 것이 아니라 남이 나를 해치려 하는 때에 정당방위로 쓰는 칼이요." 정작 사람이 입으로 꿀같이 말을 달게 하고, 배에 칼 같은 마음을 품고 산다며, 그 사악함을 역설합니다.

창자도 없다 놀림당하는 무장공자(無腸公子) 게가 말합니다. "사람의 창자는 참 썩고 흐리고 더럽소. 의복은 능라주의로 지를 흐르게 잘 입어서 외양은 좋아도 다 가죽만 사람이지 그 속에는 똥밖에 아무것도 없소." 하며, 불편부당不偏不黨한 일을 당해도 숨죽여 사는 한편, 불편부당한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하는 사람이 곧 무장공자라 외칩니다.

두 손 싹싹 빌며 사는 영영지극(營營之極) 파리가 연단에 오릅니다. "저들끼리 서로 빼앗고, 서로 싸우고, 서로 시기하고, 서로 흉보고, 서로 총을 놓아 죽이고, 서로 칼로 찔러 죽이고, 서로 피를 빨아 마시고, 서로 살을 깎아 먹되 우리는 그렇지 않소" 라며 남을 해치지 말고, 자신을 해치는 물욕과 썩은 생각, 간신, 소인배 같은 마귀를 쫓아내라 수십 억 마리 파리가 모여 빌겠답니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호랑이가 부드득 이를 갈며 연단에 서서, "대낮에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으며 죄 없는 백성을 감옥서에 몰아넣어서 돈 바치면 내어 놓고 세 없으면 죽이는 것과, 임금은 아무리 인자하여 사전(赦典)을 내리더라도 법관이 용사(用事)하여 공평치 못하게 죄인을 조종하고, 돈을 받고 벼슬을 내어서 그 벼슬한 사람이 그 밑천을 뽑으려고 음흉한 수단으로 정사를 까다롭게 하여 백성을 못 견디게 하니, 사람들의 악독한 일을 우리 호랑이에게 비하여 보면 몇만 배가 될는지 알 수 없소." 언성을 높입니다. 길지 않은 인생, 옳은 일만 할지라도 다 못 하고 죽을 것이라며, 험악하고 흉포한 인간에게 온갖 권세 준 것이 부당하다 주장합니다.

쌍거쌍래(雙去雙來) 원앙이 슬프게 말합니다. "동산의 한 송이 꽃을 보기 위하여 조강지처를 내쫓으며, 남편이 병이 들어 누웠는데 의원과 간통하는 일도 있고, 복을 빌어 불공한다 가탁(假託)하고 중서방 하는 일도 있고, 남편 죽어 사흘이 못 되어 서방해 갈 주선 하는 일도 있으니, 사람들은 계집이나 사나이나 인정도 없고 의리도 없고 다만 음란한 생각뿐"이라거나, 성차별, 남녀 불평등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부부 신의 지켜 백년해로(百年偕老)하라 외칩니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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