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타 버린 꿈의 비애, <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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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의 시네레터] 타 버린 꿈의 비애, <버닝>

  • 승인 2018-05-23 14:08
  • 현옥란 기자현옥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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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소년이 비닐하우스를 태웁니다. 화면 가득 어두운데 활활 비닐이 타고 쇠로 된 틀만 시커멓게 서 있습니다. 이미 다 큰 청년의 꿈속입니다. 그런데 이 꿈은 아버지의 폭력에 견디다 못해 집 나간 어머니의 옷을 태운 기억과 겹칩니다. 이처럼 이창동 감독이 그려내는 세계는 냉철하고 비관적입니다. 전작들인 <초록물고기>(1997), <박하사탕>(1999), <오아시스>(2002), <밀양>(2007), <시>(2010)와 같습니다.

이번 영화 <버닝>이 다른 점은 꿈마저 태운다는 겁니다. 식구들끼리 작은 식당 하나 차리고(<초록물고기>), 다시 과거로 돌아가겠다고 절규하거나(<박하사탕>), 낮은 자끼리 사랑하고(<오아시스)>, 숨은 하늘의 뜻을 찾거나(<밀양>), 인생사의 비애를 예술적으로 공감(<시>)하는 꿈을 꾸지 못합니다. 비관적 현실 속에서도 애틋하고 애절한 꿈을 놓치지 않던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아예 꿈조차 꾸지 못합니다.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다던 시인의 탄식(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과도 같습니다.

더 아픈 것은 이 태움이 강요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고, 공부도 할 만큼 했음에도 제자리를 찾아 뿌리내리지 못하고 부유하는 청년 세대의 아픔입니다. 꿈 안에 담긴 과거와 미래의 시간이 함께 탑니다. 빈약한 현실에 잇닿은 과거도 미래도 앙상합니다. 그것까지도 태워야 하는 처지가 한없이 비참합니다.

이창동 영화의 현실은 차갑기 이를 데 없습니다. 아름다운 구도, 매혹적인 풍경, 살가운 정취가 전혀 없습니다. 쓸쓸하고, 어두우며, 냉기가 가득합니다. 인물들 역시 사내들은 왜소하고, 여인들은 메말랐습니다. 타인에 대해서는 늘상 경계심이 가득하고, 스스로에게도 웃음기를 거둔 자들이 영화 속을 서성입니다. 그러다가 문득 환상의 장면이 개입합니다. 그리고 그 환상과 현실의 경계는 모호합니다. 보는 이는 환상이 현실을 구원하는가 질문하게 됩니다. 결국 환상은 환상일 뿐임을 깨우치고는 현실의 냉혹함에 몸서리쳐집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마저의 환상도 거두어들입니다. 노을 지는 들녘으로 새가 날 때, 옷을 벗고 춤을 추는 해미(전종서 분)는 자유로워 보이지 않습니다. 외려 절망감을 더합니다. 어느 면에서 이 영화는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와 대비됩니다. 돌아와 희망을 찾은 자와 이승의 옷을 태우고 빈 몸으로 먼 길 떠나는 자의 모습이 확연히 다릅니다. 젊은이들의 아픔과 슬픔이 재로 끝나지 않고, 다시 기름이 되어(한용운, '알 수 없어요') 타오르기를 바랍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김대중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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