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광 이사장 |
대전은 과학도시이다. 여기에 토를 다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과학도시라서 어떻단 말인가"라고 시비를 거는 이가 있다면? "대덕연구단지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기술개발에 큰 역할을 하였으니 과학도시라 불릴만하지 않는가?"라고 항변해 본다.
그러면 대전은 혁신도시인가? 아~ 이 질문에는 대답이 바로 나오질 않는다. 혁신이란 무엇인가? 지난주 미국 출장길에서 만난 노스캐롤라이나주 정부의 한 공무원이 말한 "Innovation이란 Something New + Value"라는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혁신은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라는 접근은 해본 적이 없는 나였기에 새삼 부끄러웠다.
어느 한 지역의 구성 주체들이 혁신하여 가치를 만들면 그 생태계는 성장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과학도시 대전에는 과학의 발전으로 가치를 만들어 내는 혁신성장이 일어난다는 징후가 보이질 않는다. 50여 개의 연구소와 KAIST 등 우수한 대학들이 집적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여기서 개발된 우수한 기술들이 시장에서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장롱 특허라 비아냥거림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뉴 밀레니엄 시대를 앞두고 온 세상이 들떠있던 1990년대 말, 우리나라에도 벤처 붐이 불어 소위 강남 복부인까지 달려들어 신기술의 신기루에 묻지 마 투자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누군가 창업해서 주식이 얼마가 올랐다거나, 또는 지인이 벤처에 투자했는데 얼마를 벌었다더라 하는 전설이 심심찮게 회자하던 때였다. 시장의 생리를 잘 모르는 연구원마저 나도 한번 해볼까 하고 엉덩이를 들썩였고, 그중 일부는 진짜 자신의 연구팀을 데리고 나가 창업을 하였다.
그 후 세계적인 IT 버블과 함께 아마추어 투성이던 우리나라 벤처 생태계도 속절없이 무너져버렸다. 창업가들이 졸지에 신용불량자가 되고 자살을 하는 이까지 나타나는 상황에서 정부는 규제 정책을 쏟아내고 감사원마저 날 선 검으로 벤처의 생태계를 얼어붙게 하였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개발한 기술을 직접 사업화하겠다는 연구원도, 창업에 도전하겠다는 젊은이도, 초기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투자자도 부족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제 시간이 흘러 세상은 천지개벽하고 있다. 중국과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벤처를 하겠다는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지난주 방문했던 실리콘밸리는 제2의 전성기를 맞아 도시 전체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컴퓨터공학자는 미취업자가 없다고 할 정도로 구글, 애플, 아마존 등 글로벌 ICT 기업들이 인재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부족한 사옥을 짓기 위해 도심 한 구역 전체를 매입하거나 아예 새로운 지역으로 그룹 전체가 옮겨가서 쇠락했던 지역이 살아나고 있었다.
부러움만 쌓여가던 그때 우연히 만난 한 한인 기업가에게서 희망을 보았다. 벤처 붐 당시 창업했던 원자력연구원 출신 기업가인데, 험난한 세월을 이겨내고 이제는 실리콘밸리를 상대로 도전하고 있었다.
그렇다. 그 시절 벤처 창업이 얼마나 혹독한지 모르고 도전했던 연구원 중에서 살아남아 지금도 도전하고 있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이들과 같이 기업가정신의 피가 흐르는 전사가 많이 있으면 된다.
혁신성장을 이룰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여기에는 연구자의 DNA를 가진 우수한 연구원도 필요하고, 창업가의 DNA를 가진 젊은이들도 필요하다. 대전에는 연구자의 DNA를 갖춘 이들이 넘쳐난다.
문제는 창업가의 DNA를 갖춘 이들이 필요한데, 이들을 찾아내어 험난한 과정을 이겨낼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혁신이 일어나려면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젊은이들이 몰려들어야 한다. 이들이 기술을 비즈니스로 만들어내는 연금술사로 자라나는 것이다. 벤처 자금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들이 머물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로 만든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들이 필요한 것은 문화와 예술, 먹을거리, 즐길 거리이다. 우수한 기술이 있고 우수한 인재가 머물면 자연스레 투자자도 모여들고 커피와 맥주를 마시다가도 비즈니스가 일어나는 것이다. 벤처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혁신성장이 일어나는 것이다. 과학도시보다는 과학혁신도시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양성광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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