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에 이런 곳이 있으리라 생각지 못했습니다. 대표 설명 듣다가 문득 드는 생각, 농경사회에는 이웃 왕래가 많았지요. 놀 때 혼자 놀 수 없으니, 어른이나 애나 마실 많이 다녔습니다. 농기구 비롯한 살림살이 다 갖추고 살기 어렵다보니, 서로 빌려 쓰느라 오가기도 하고, 품앗이 하느라 네 집 내 집 스스럼없이 넘나들지요. 좀 과장되게 말하면, 가가호호 숟가락 개수 알정도가 되었습니다. 도시 생활은 이웃과 왕래가 없지요. 맞닿은 바로 옆집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 겉도는 것이 아닌가합니다. 저 멀리 해외여행은 주살나게 다녀도 가까운 이웃은 등대고 사는 실정입니다.
예전 마을은 교류가 많은 것을 넘어 공동운명체였지요. 모든 것을 함께 생각하고 더불어 행동합니다. 의식하지 못해서 그렇지, 도시생활이나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생각합니다. 쓰레기 처리나 주차 같은 아주 작은 일부터 커다란 일까지 섬세하게 연결되어있지요. 너무 잘 짜여 있어 인식하지 못 하거나 소홀히 대하고 지낼 뿐입니다. 변함없이 모든 집단에 공동체의식, 공공의식이 필요 하지요.
동네 이름 또는 영역을 알리는 표식이나 상징물, 다른 마을에 이르는 거리표시, 외부에 대한 방어 장치, 마을을 질병이나 천재로부터 보호하고, 평안과 번영을 추구하는 집단의식이 담긴 형상, 염원을 담거나 신과 소통하기 위해 만든 기원물, 영광과 그 영광의 지속을 바라는 기념물 등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군가 만들어 세우지요. 예전엔 모두 자연부락에서 함께 만들었답니다. 아직 전하여지는 서낭당, 솟대, 장승, 신목, 거석 등이 그것입니다. 사찰 당간도 그에 해당하겠군요.
장승마을, 솟대마을 등 전국에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지역에도 다수 있지요. 형태에 남아있는 상징성이나 철학, 해학 등 그에 담긴 의미와 미감을 한꺼번에 즐기는 것도 필요하겠지요. 경우에 따라 전문인이 만든 창작물이 주가 된 전시장도 있더군요. 그때는 전시 의도가 달라야 합니다. 전통의식이나 집단의식을 전하는 것이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형문화재가 전시장에 서는 순간, 보여주기 위한 형태가 되지요. 박제된 문화가 되는 것이 안타깝지요. 살아있는 문화가 아니라 죽은 문화 또는 창작 예술이 되고 맙니다. 인산솟대마을 또한 전시물이 많지요. 하나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지형지물을 그대로 활용, 과거와 현재, 미래를 공존시켜, 살아있는 문화공간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돋보이더군요.
문화 현장을 찾아내 그대로 보전하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입구 모습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거석이 올라있는 커다란 바위아래 언월도偃月刀가 꽂혀있는가 하면, 장승과 솟대가 서있고, 마을 상징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오방색천이 감긴 거석을 지나 남근석과 여근석이 있기도 하고, 용바위, 거북바위, 신선바위, 자라바위, 동자바위, 산신바위 등이 비탈길 따라 도열해 있습니다. 주저리주저리 담긴 전설과 삶의 흔적을 찾아내고, 새로운 전설과 신화를 창조하려는 김익열 대표의 상상력도 대단하더군요. 압권은 꽤 큰 규모의 천연동굴입니다. 아직 작지만 석순이 자라고 있고, 상당량 물이 솟아 동굴 안을 흐르고 있습니다. 소리가 없어도 동굴에 가득 담긴 이야기가 절절히 전해옵니다.
유형문화재도 중요하겠으나 거기에 담긴 정신문화가 더 중요하다 생각하지요. 따라서 제작과 설치 과정도 중요합니다. 집단의 의기를 모으는 사전 작업, 제주나 주사 선정 등 조직구성 절차도 중요하지요. 선정된 사람은 목욕재계하고 삼칠일간 금기를 지키며, 소재도 극진히 대우하여 온갖 정성과 공을 들입니다. 모은 뜻으로 함께 작업하고 제를 올리지요. 자연스레 집단의식이 만들어지고 공유하며 나눕니다. 의도하지 않아도 우리가 이상으로 생각하는 더불어 사는 참모습이 스스로 형성됩니다. 거기에 꿈이 만들어지고 야망이 자랍니다. 인산솟대마을은 그런 소중한 의식체험도 준비하고 있더군요.
이웃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좋은 문화현장도 만나보면 어떨까 해서 소개합니다. 귀하고 소중한 것이 멀리에만 있지 않습니다. 스스로 섬이 되어가는 세태, 동서양이 다른 만큼이나 이웃이 다르기도 하답니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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