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도 미술비평가 |
한국의 근대사에서 일제로부터의 해방 이후 가장 커다란 비극이었던 6.25 남북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으로부터 68년이 지났다. 국민들은 전쟁의 발발에서 휴전까지 4년 1개월 동안 일본 제국주의 식민시기 35년에 비교될만한 고통을 겪었다. 전쟁을 겪은 당사자들에게 그 시간은 모든 고통이 망라된 100년보다도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그들 고통과 공포의 끝이 보이지 않을 때, 혹은 미래를 희망할 수 없을 때 시간을 아주 길게 느끼게 된다. 그리고 사건 당사자와 외부자가 느끼는 정서적 강도는 감각적으로 상대적이다. 사실 정서라든지 감정이라는 말들은 비이성적이라고 생각되어 왔지만 시청각을 비롯한 감각적 효과들의 측정과 재현이 가능해지면서 이성의 하위개념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했다. 소위 객관적이라고 하는 기준에 맞추기보다는 상대적인 합의가 중요한 민주주의처럼 서로의 정서가 충돌하지 않을 때 사회는 안정된다.
시간이 상대적이라는 말은 달리 말해 시간이 감각적인 현실의 핵심적인 본질이라는 의미이다. 현실을 절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현실을 관망하는 아웃사이더와는 다른 시간의 길이를 가진다. 이는 수백 년의 수명을 가지고 있는 동물과 100년이 채 못 되는 수명을 지닌 인간의 운동감각으로 드러나는 반응속도의 차이에 비교해도 짐작할 수 있다. 절실함의 강도와 행위의 속도는 비례한다.
생물학의 관점에서 보면 문화가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라는 인간중심적 사고는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러나 인간이 특별한 것은 문화를 계보적 구성을 통해 정신의 확장이 가능한 혁명적 상황으로 재구성해왔다는 것이다. 문화의 구성적인 차원이 가능해진 것은 글을 사용해 생각하고 추론해 왔기 때문이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텍스트적 논리성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미디어 이전의 문화는 언어를 통해 생각하고, 글을 통해 진화해 왔다. 글은 생각을 물질적으로 표현한다. 물질적인 구체성을 지니고 있는 글은 생각의 도구이고 정신의 상징적인 표상(emblem)이다.
인간에게 혁신이란 언어라는 도구를 변화시키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행동도 변화한다. 행동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는 언어는 거짓말이 된다. 21세기 초연결 미디어 사회의 기술은 그동안 말과 글이 인간의 생각과 맺어왔던 정신의 텍스트적 영역을 인간의 감각이 시각적 이미지를 포함하는 광의의 언어에 직접 연결 될 수 있는 상황들로 확장시켜 준다. 감각적 확장은 새로운 차원의 세계와 인간의 현현을 경험하게 해준다. 물질적으로 부재하지만 경험할 수 있다면 가상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21세기 미디어 환경에서 우리는 감각하기에 존재할 수 있다. 기술매체와 인터넷을 통한 안드로이드적인 혁명의 시대적 변화와 한반도 통일의 비전은 시간의 몫이다.
정용도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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