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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정사장 오랜만이네. 자네도 그 동안 잘 지냈고 사업도 여전한가? "
"다름 아니라 오는 2월 19일에 선생님 모시고 저희반( 3학년 1반) 반창회를 하려 하는데 그날 선생님 시간이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30년 만에 반창회를 하려는데 담임이었던 나에게 참석여부를 묻는 제자의 전화였다. 나야 뭐 퇴직 후 놀고먹는 백수(白手). 시간 없다고 핑계 댈 일이 뭐 있으랴.
통화 끝에 30년 전 충남고등학교 3학년 1반 반창회 날짜가 보름 뒤 2월 19일로 잡혔다.
드디어 반창회 날.
오후 5시가 되자 전국 각지에서 보고팠던 얼굴들이 모여들었다. 강산이 세 번 정도 바뀐 사이에 제자 아닌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은 얼굴도 있었다. 머리가 허연 한 제자는 내가 형님이라 불러도 마다하지 않을 것 같았다. 기억을 되살려 지식이, 여직이, 국렬이, 승훈이, 정렬이, 상룡이, 석환이, 형구, 종석이, 상보, 문기, 근욱이, 남선이, 기원이, 영우, 대성이, 규일이, 철욱이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 주니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 지금까지 저희 이름을 다 기억하고 계시니 예나 지금이나 참 대단하십니다."
이름 불러 준 대가를 톡톡히 찬사로 받았다.
만년 풋풋한 학생의 모습으로만 보일 것 같았던 제자들이 벌써 듣기 좋은 찬사까지 할 줄 아는 어른으로 바뀌다니 … ! ! !
역시 시간의 위력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의 흐름은 앳된 풋내기 학생 하나하나의 모습을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어른으로 바꿔 놓았다. 주름살까지 계급장으로 자리매김해 놓았다. 거기다 듣기 좋은 덕담까지 할 줄 아는 의젓한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다.
아니, 옛날 담임까지 챙길 줄 아는 성숙한 사람으로 탈바꿈해 놓았다. 요술사와 같은 세월의 위력에 유한적 존재의 무력감이 머리를 헤집고 가는 것 같았다.
' 3학년 1반 반창회 모임 '
나는 다반사(茶飯事)로 있는 그냥 저녁 먹는 자리로 알고 갔는데 이게 웬일인가 ?
회식 장소에 들어가자마자 걸려 있는 플래카드 !
『慶 남 상 선 恩師님 停年退任을 眞心으로 祝賀드립니다.祝 (2011年 2月 19日 충남고등학교 23회 3 學年 1 班 弟子 一同)』
자리에 앉자마자 회상(膾床)을 차려놓은 앞에서 제자들이 절을 받으라고 야단들이었다. 성화에 못 이겨 방석 위에서 제자들 절을 받았다. 이어서 행운의 열쇠와 감사패를 받았다. 요즈음같이 삭막한 세상에 30년 전 담임을 생각하고 챙기는 마음이 너무나 고마웠다. 값어치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동안 교통사고로 아내를 보낸 후 얼마나 외롭고 힘든 생활을 해왔던가?
힘들게 살아 온 세월을 순간의 자리가 보람으로 채워 주었다. 그렁그렁한 감동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천금 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행복감으로, 집중공격해오는 제자들의 술잔을 피하지 않고 모두 받았다. 이 행복한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채 지난 80년대의 3학년 1반 골동품 같은 얘기를 듣고 있었다. 똘이장군(80년대 당시 내 별명) 이야기로 시작해서 장전(裝塡)된 추억의 탄알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쌈질하다가 화장실 청소하는 '박박솔'로 얻어맞은 얘기며, 술 담배 몰래하다 재수 없이 걸려 혼난 얘기, 숙제 안 한 대가(代價)로 도장부리 세례를 받아 머리통이 얼얼했던 얘기며, 야간 자습 않고 땡땡이쳤다가 주의 받은 얘기, 싸움에 가담하고서도 의리 있는 행동을 했다하여 칭찬받았던 얘기, 거짓말하지 않았다고 칭찬으로 인정받았던 얘기, 착하고 성실한 생활로 찬사 들은 얘기, 책임감과 리더십이 돋보이어 장래가 촉망된다는 얘기를 비롯해서 입시 상담할 때 고집부리며 옥신각신했던 얘기, 성적과는 무관하게 차별대우 없이 꾸중 들었던 얘기, 등등…….
바리바리 싸가지고 온 80년대의 추억 보따리들이 그칠 줄 모르고 풀리고 있었다. 오랜 세월 속에 모든 것이 탈바꿈하여 몰라보게 변했다. 강산도 변했고 제자들 머리칼도 희끗희끗하게 바뀌었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학창시절 나누던 순수한 우정이었다. 아니 전에 듣던 사투리로 술잔에 담아 건네는 따뜻한 가슴에서 나오는 값이 나가는 동료애였다. 희로애락을 함께하고픈 '동창'이라는 사슬로 묶어 놓은 순수한 정이었다. 그저 그냥 운동장서 함께 공차고 웃고 즐겼던 학창시절의 얼굴들이 보고 싶어서 모여든 그런 순수였다.
야간자습으로 찌들다시피 동고동락했던 그저 그런 얼굴들이 그리워서 모여든 자리였다.
머리에서 생각한 것이 따뜻한 가슴으로 전해지기까지는 평생 걸려도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자랑스런 제자들은 그것을 해내고 있었다. 사랑과 우정의 종합 백화점이 따로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아름다운 것들이, 박물관의 골동품처럼 그 자체로 빛나고 있었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만져볼 수 있는 것도 아닌 오로지 마음속에 느낄 수 있는 그런 사랑이, 우정이 오가는 자리였다. 그런 소중한 것들이 가슴과 가슴이 하나가 되어 대가성 없는 거래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는 어느 덧 평화경(平和境) 속의 한 마리의 소〔牛〕가 되어 있었다. 아니, 지난 세월의 그림자를 반추(反芻)하는 멍에 없는 소가 되어 있었다.
제자들 모습 하나하나에서 청출어람(靑出於藍)을 느낄 수 있었다. 개개인마다 사람냄새 풍기면서 사회를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살고 있는 늠름한 일꾼들이었다.
아니, 가정을 지키고, 직장을 지키고, 국가를 지키는 버팀목들이었다. 반창회의 얼굴 하나하나가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기뻤다. 그 자랑스러움과 기쁨이 희석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교사라는 직업이 사람을 '-답게 사는 존재' 로 만드는 힘든 일로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런 걸로 위안 삼고 보람의 희열을 느끼는 것이 아니겠는가!
처음 만났을 때 이름 기억이 날 듯 말 듯하여 불러 주지 못한 정민이 이름은 알게 모르게 다른 제자한테 힌트를 받아 술잔이 오갈 때 불러 주었다. 너무나 좋아했다. 다른 친구 이름은 다 불러주는데 자신의 이름만 기억을 못하는 것 같아 서운했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힌트 받아 불러 준 이름이었지만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창회의 모임!
거기는 30년 전 추억의 골동품들을 보따리마다 바리바리 싸가지고 온 그런 자리였다.
고가의 돈을 주고서도 살 수 없는 정말 값이 나가는 골동품 추억들이었다. 거기엔 우정과 사랑을 더한, 바로 가슴과 가슴으로 전하는 진실과 사랑과 우정이 녹아 흐르는 그런 자리었다.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세월 속에서 다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반창회 날 싸 가지고 온 바리바리 보따리들'
해마다 풀고 푸는 보따리는 다 해어져도 그 안에 숨 쉬는 우정과 사랑은 가슴과 가슴으로 영원히 이어지길 바란다.
아니,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고가의 골동품으로 오래오래 남아 있어주길 주문해 본다.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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