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 갑작스런 지진으로 해외 현지의 공사장이 무너져 아수라장이 되면서 현장은 전쟁터를 방불할 정도가 되는데, 파병군인들은 생존자 구조에 나서고 의료진들을 부상자들을 치료하면서 생과 사를 오가는 긴박한 순간들을 가슴 아프게 본 기억이 있다.
드라마 속에는 깨알 같은 코미디도 있었다. 말로 표현하기 민망한 '그 곳'에 다이아몬드를 숨긴 '진소장'은 현지 의료봉사단이 세운 메디컬큐브에 나이롱 환자로 입원해 의료진을 향해 큰소리치며 갑질을 일삼아 공분을 사기도, 되레 의료진에게 된통 당하면서 웃음을 주기도 했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병원 응급실에서 드라마 속 '진소장'처럼 난동, 갑질, 고성 등의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이 비일비재했다. 환자가 몰릴 땐 누가 환자고 누가 의사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북적이는 곳이라는 인식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고열로 방문하게 된 응급실은 작년에 왔을 때와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먼저 환자가 응급실로 들어서려면 먼저 2개의 분리된 룸을 지나야 했다. 바로 접수창구와 초진실이다. 119에 실려온 환자도 바로 들어가지 않았다. 반드시 초진실을 거쳤다. 이곳에서 간호사는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고 진료과를 구분해 응급실로 들여보냈다. 환자는 팔찌를, 보호자는 출입카드를 목에 걸고 서야 통과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누구나 문 하나만 열면 손쉽게 들락거릴 수 있었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출입이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었다.
이렇듯 입실절차가 복잡해진 것은 지난 2015년 한반도를 공포에 떨게 했던 메르스 사태 때문이다. 당시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이 뒤엉킨 '도떼기 시장' 같은 응급실은 병원 내 감염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받았으며,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만 수십명의 환자가 발생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에 정부가 응급실 감염 문제를 예방하고 환자 진료를 신속히 하기 위핸 개정법안을 마련하고 이를 지난해 12월부터 시행중이다. 법안의 핵심은 응급실 출입 제한이다. 응급실에 출입할 수 있는 보호자를 환자당 1명으로 제한했다. 다만 영유아나 장애인 등 부득이하게 진료 보조가 필요한 경우에는 최대 2명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또한 응급실 과밀화를 줄이고 환자의 진료 대기시간을 단축하고, 병원이 환자를 응급실에 오래 머물게 하지 못하도록 규제했다.
소위 '잘나간다'는 대형병원들은 병상이 없어 입원하려면 몇 달씩 대기하는 것이 예사였고, 응급실도 병상이 부족해 환자가 간이침대, 의자, 바닥에서 대기하는 일이 허다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 이곳은 환자들이 몰릴 평일 밤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틈틈이 비어있는 병상이 보였다. 진료와 검사가 빨라지자 퇴원 또한 빨라져 환자가 응급실에 머무르는 시간이 확 줄어들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예전의 시끄럽고 지치고 짜증났었던 기다림의 시간은 이제 쾌적하고 편안한 시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오랜 시간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지만 이것만으로도 참 좋은 변화다.
바뀐 현실에도 응급실에서 난동을 피우는 '진소장'들이 여전히 곳곳에 있다. 응급실은 병원 문이 닫힌 밤 시간대 위급환자들이 방문할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다. 술에 취해, 열 받는다고 마음대로 난동 부리고 스트레스를 푸는 '하수구'가 돼선 안된다.
현옥란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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