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이다. / 웃어준다고 내 편일까?
손잡아 흔들었다고 마음 열까?
의자는 비어 있고 / 앉고 싶은 사람은 많다.
도광양회(韜光養晦) / 목계지덕(木鷄之德)
누굴 향해 하는 말인가.
어디 이런 사람 없는가?
내 아는 지인께서 익명으로 보내준 시(詩)다. '도광양회(韜光養晦)' 와 '목계지덕(木鷄之德)'이라는 의미를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 앉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1, 그럼 보자 도광양회
'자신의 재능을 숨기고 인내하며 때를 기다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14세기 중엽 명나라의 나관중(羅貫中)이 쓴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나온다. 현재의 상황이 불리하면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드러나지 않게 하며 자신이 모든 조건을 갖춘 다음에 나서야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말이다. 유비가 조조와 실력으로 되지 않으니 이렇게 때를 기다렸다는 게 아닌가?
이처럼 도광양회는 천하를 통일할 꿈을 품고 있는 유비가 여포(呂布)에게 쫓겨 조조(曹操)의 식객으로 머물던 무렵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유비는 조조의 경계심을 풀기 위해 후원에서 채소를 가꾸고 물을 주며 소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조는 유비를 경계하라는 부하의 계속되는 진언에, 유비를 식사에 초대하여 "천하에 영웅이 있다면 그대와 나 뿐이다"라고 유비의 진심을 떠 보았다. 유비는 짐짓 천둥소리에 놀란 듯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이것을 본 조조는 유비가 생각보다 그릇이 작은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뒤에 유비가 떠나는 것을 허락했다. 훗날 유비는 제갈량(諸葛亮)이라는 인재를 얻고, 민심을 바탕으로 군사를 일으켜 조조에 대적할 만한 큰 인물이 되었다.
상대의 힘이 자신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았을 땐 상대와 싸우려 들기보다는 비켜감으로써 화를 면할 방법을 궁리한 것이다. 이 고사 성어는 과거 덩샤오핑 시절 중국의 대외정책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자주 인용되기도 하였다. 중국이 미국과 상대로 싸우는 것을 보았는가?
2, 두 번째 교훈 목계지덕(木鷄之德)
이 고사는 삼성을 창업한 고(故) 이병철 회장께서 이건희 아드님에게 가르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병철 회장은 이건희 아들이 삼성에 입사한 첫날 '목계지덕'이라는 휘호를 적어주고 벽에 걸어두고 매일 묵상하며 마음에 새기게 했다 한다.
나무로 만든 닭 목계(木鷄)!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통제할 줄 알고, 상대방에게 자신의 매서운 눈초리를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근접할 수 없게 하는 매서움을 지닌 사람.
"望之似 木鷄, 其德全" (망지사 목계, 기덕전) "보기에 흡사 나무로 만든 닭과 같으니, 그 덕이 완전하다" 장자(壯者)'달생(達生)'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투계(닭 싸움)를 좋아하던 왕이 '기성아'라는 사람에게 용맹한 싸움닭을 구해서 최고의 투계로 조련하도록 명했다. 그런 후 열흘이 지나 왕이 물었다.
"닭이 싸우기에 충분한가?"
"아닙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닭이 강하긴 하나 교만하여 아직 자신이 최고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 교만을 떨치지 않는 한 최고가 될 수 없습니다."
열흘이 다시 지나서 왕이 묻자
"아직 멀었습니다. 이제 교만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의 소리와 그림자에 너무 쉽게 반응합니다."
다시 열흘이 지나서 왕이 묻자
"아직 멀었습니다. 조급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을 노려보는 눈초리가 너무 공격적입니다."
왕은 또 열흘을 기다렸다가 물었다. 그제야 조련사는 만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된 것 같습니다. 이제 상대방이 아무리 위협하는 행동을 하면서 소리를 질러도 아무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완전히 마음의 평정을 찾아 드디어 나무와 같은 목계(木鷄)가 됐습니다. 이제 어느 닭이라도 이 닭의 모습만 보아도 고개를 숙이고 부리를 감출 것입니다."
장자가 이 고사에서 말하고자 하는 최고의 투계가 무엇인가?
첫째, 자신이 제일이라는 교만함을 버린 자.
둘째, 귀는 열어 놓되 입은 굳게 닫혀있는 자.(상대의 언행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자)
셋째, 상대방에 대한 공격적인 언행은 삼가는 자.
중국은 등소평 이후 시진핑이 미국이나 러시아, 일본에 대하는 태도를 보라.
중국은 서방에 문호를 열고 사유경제를 채택하면서 세계 최고의 인구를 바탕으로 한 내수 시장과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경제 성장을 유도하여 2000년대 후반 이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것을.
이런 정책은 당시 서구 열강들에 대항할 만한 국제적 힘을 갖추지 못한 중국의 처지에서 매우 현실적인 선택이었으며, 이후 고도 경제 성장을 통해 중국이 시진핑 시대와 같은 위상에 오르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던 것이다.
자 보자. 후보들이여!
의자는 한 개뿐이다. 누가 차지할 것인가?
자존심으로 꽉 차 있는 자? 아니면 오만함과 교만함으로 공격적인 어투를 내 뱉는 자? 높은 사람과 사진 한 번 찍은 것을 자랑으로 내세우는 자? 모두 아닌 것이다.
머릿속은 꽉 차 있으되 교만하지 않고, 귀는 열렸으되 입은 닫혀 있는 자(남 험담을 하지 않는 자). 공장 폐수까지도 받아들이는 바다처럼 마음이 넉넉한 자. 선거 사무실에 태극기를 펄럭이게 게양한 국가관이 확실 한 자. 이런 사람이라야 그 한 개 뿐인 의자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기대 된다. 6월 13일.
김용복/ 극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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