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기의 행복찾기] 잊는 것과 잃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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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기의 행복찾기] 잊는 것과 잃는 것

박광기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승인 2018-04-20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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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달째 찾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헤드폰이고 다른 하나는 이어폰입니다. 평소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이 거의 없지만 이 물건들을 어디에 두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분명 어디에서 잃어버린 것은 아니고 어디에 잘 보관했을 것인데, 그 보관해 둔 장소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이것들은 평소 헤드폰이나 이어폰을 통해 음악을 듣는 것을 즐겨하는 것은 아니지만, 출장을 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될 경우 사용하기 위해 구입한 물건들입니다. 더구나 헤드폰은 독일 출장을 갈 때 비행기에서 거금을 주고 구입한 꽤 좋은 제품이라서 꼭 찾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헤드폰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구입하고 얼마 동안 들고 다니는 가방 속에 늘 함께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 헤드폰을 사용한 경우는 불과 몇 번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가방을 바꾸고 많이 사용하지 않는 탓에 다른 곳에 잘 보관해 두었던 것인데 다시 찾을 수가 없습니다. 헤드폰을 찾기 위해 그 동안 들고 다녔던 가방들을 다 뒤지기도 했고, 둘만한 곳을 다 찾아보았지만 구입할 때 포장 상자는 있는데 막상 헤드폰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헤드폰을 찾다가 핸드폰을 구입할 때 받은 이어폰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 이어폰 역시 외투 속에 가지고 다니다가 필요할 것 같아서 어디에 두었는데 그 역시 어디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필요할 것 같아서 잘 두었는데 막상 사용하지 않다보니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헤드폰과 이어폰을 찾느라 이곳저곳을 뒤지면서 불현 듯 그 동안 살면서 이렇게 잊고 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잊어버린 것도 있고,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소홀히 하다가 결국은 잊고 지내는 것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 기억하는 것에는 아무리 기억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무엇을 잊고 지내는 것인지 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반드시 기억하려고 또 때로는 소중하기 때문에 잘 기억하고 간직하려고 평소 두지 않는 곳에 잘 두었음에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 잘 둔 곳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내게 헤드폰이 그렇고 이어폰이 또 그렇습니다. 헤드폰을 그리고 이어폰이 언젠가는 필요할 것 같아서 정말 잘 보관하려고 했다는 사실은 기억하는데 그곳이 어디인지가 생각나지 않으니 말입니다.

아무튼 수개월째 헤드폰을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말 내내 또 그 물건들을 찾으려고 온 집안을 뒤졌습니다. 아마도 너무도 잘 두었기에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소 손이 잘 닫는 곳에 두었다면 이미 쉽게 찾았을 지도 모르지만,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잘 둔 것이 지금은 찾기 어려운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마도 이 헤드폰과 이어폰은 지금 어느 곳에 꽁꽁 숨어서 보이지 않다가 다른 물건을 찾으려고 하다가 발견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잃어버리지는 않았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의 기억이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부모님이나 가족의 생일을 기억하는 것도 그렇고 중요한 날이나 일을 기억해야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세월호 사건과 같이 힘들고 아픈 기억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기억과 시간은 이런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조금씩 잊게 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의도적으로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조차 잊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기억의 강도가 점차 줄어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기억에서 하나 둘씩 잊어가는 것들이 쌓이다 보면 우리는 또 다른 의도하지 않은 많은 것들을 잃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기억에서 멀어져가는 것들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면 다른 것들을 잃게 되는 것 말입니다. 바로 어제까지 기억하고 있던 부모님의 생신을 막상 오늘 잊어버리게 되면 그것으로 인해서 부모님과의 관계가 다소 서먹해지면서 '관계'라는 것을 잃게 되거나 적어도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잊음'으로 해서 나타나는 '잃음'이 우리 삶의 도처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잃음'은 어쩌면 '단절'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무엇인가를 잃게 되면 그것을 찾기까지 너무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영원히 되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잊어버렸을 경우에는 그 기억이 되살아 날 경우 '잊음'을 극복할 수 있지만, '잃음'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잃는다는 것은 때로 막대한 손실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억한다는 것이 중요한 만큼 잃어버리지 않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는 살면서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습니다. 기억하기보다는 잊어버리는 것이 필요한 경우가 그렇습니다. 아프고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것들을 내내 기억하면서 그것들에 함몰되기 보다는 그 기억들을 툴툴 털고 일어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을 우리의 삶 속에서 통으로 잃어버리는 것이 더 나을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잊는다는 것'과 '잃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잊지 말아야 할 것도 있고 잊어야 하는 것도 있으며, 잃어버려야 하는 것도 있고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 모두 존재합니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를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또 역시 잃어 버려야 하는 것과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을 구분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구분과 판단이 결코 쉬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구분과 판단이 쉽지 않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구분과 판단을 해야만 할 때가 있고, 그것을 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어디엔가 잘 둔 헤드폰과 이어폰을 다시 찾고 싶습니다. 비록 그것이 평소 늘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잘 보관한 곳이 어디인지 기억해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수개월째 기억을 되살려 찾아보고 있지만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기억이 나지 않아서 잊어버린 헤드폰과 이어폰을 결국은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불안감도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헤드폰과 이어폰과 같이 내가 살면서 기억하지 못한 것이 또 있는지 그리고 이렇게 기억하지 못해서 잃어버린 것은 또 없는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잊음'으로 해서 결국은 '잃음'으로 되어버린 것은 없는지 염려되기도 합니다.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기억해야 하고, 잃어버리지 말아야 하는 것은 반드시 다시 찾아야할 것입니다. 이번 주말 그 동안 살면서 잊어버린 것과 잃어버린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들로 인해서 단절된 것들은 없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반드시 다시 기억하고, 잃어버린 것은 다시 찾아보는 그런 시간 말입니다.

행복한 주말되시길 기원합니다.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광기 올림

박광기교수-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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