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타인의 시선을 개의치 않는 대가는 혹독했다. 동성애 상대남인 알프레드 더글러스의 아버지로부터 고소를 당했던 것이다. 당연히 패소했다. 죄목은 풍기 문란죄. 어느 사회에서나 동성애는 금기였다. 동성애는 죄악이었고 동성애자는 배척해야 할 대상이었다. 결국 국적마저 박탈당한 와일드는 해외를 떠돌다 병에 걸려 파리의 한 호텔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2018년 봄, 자유한국당 소속 충남도의회는 '충남인권조례'를 폐지했다. 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이유다. 충남인권조례의 모태인 '국가인권회법' 2조 3항에는 차별금지법이 있다. 거기에는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해선 안된다'고 명시돼 있다. 야당 의원들이 문제 삼는 대목이다. 인권조례 폐지에 찬성한 이들은 앞으로 성 소수자를 차별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인권조례 폐지는 장애인, 이주민, 노인 등 소수자에 대한 지원 정책에도 제동이 걸리게 된다. 정치인들은, 우리는 왜 소수에 대한 억압과 혐오를 멈추지 않는 걸까. 왜 우리는 다름에 대해 불편해 할까.
지난 겨울 일대 광풍이 불었던 평창 롱패딩 유행은 충격적이었다. 청소년들이 하나같이 검은 롱패딩을 휘날리며 거리를 활보했다. 롱패딩을 안 입으면 명함도 못 내밀 분위기였다. 흡사 카드섹션이라도 벌이듯 일사불란한 패션문화는 섬뜩했다. 소외되지 않기 위한 그들의 몸부림은 처절했다. 이거야말로 파시즘 아닌가. 무리에서 다르다는 걸 우리는 낙오로 받아들인다. 반항 내지는 비정상으로도 간주한다. 다양성이 공존할 수 없는 사회는 이런 것이다. 획일적이고 창의성을 죽이는 사회, 얼마나 끔찍한가.
"인간의 표준은 없다." 얼마 전에 영면한 스티븐 호킹이 한 말이다. 그는 죽을 때까지 휠체어에 의지한 중증의 장애인이었다. 온 몸과 얼굴 근육까지 굳어 의사소통도 불가능했다. 그는 사지가 뒤틀리는 장애와 싸우며 세계적인 물리학자로서 큰 업적을 남겼다. 만약 스티븐 호킹이 한국에서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 이 사회는 소위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뚜렷하다. 우리는 그것을 옳고 그름이라고 규정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내국인과 이주민, 남성과 여성,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다 같이 공존하는 사회로 나아가자고 끊임없이 외치지만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소수에 대한 다수의 업신여김과 폭력은 집요하기만 하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동성애 혐오단체는 동성애 문제를 정치인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노무현 정부는 2007년 차별금지법 제정을 입법예고 했다가 동성애를 혐오하는 세력에 굴복해 결국 폐기했다. 서울 시민 인권현장 역시 박원순 시장이 정략적 이해 관계에 휩쓸리는 바람에 삭제되고 말았다. 문재인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해 대선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문재인 후보에게 동성애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따져 물었다. 문 후보는 차별금지법을 만들지 않겠다고 밝혔다. 표를 의식한 발언이었다.
6.13 지방선거도 심상찮다. 충남인권조례 폐지를 계기로 일부 지자체가 관련 조례를 폐지하려는 낌새다. 지난해 충남 보수 개신교 단체는 인권조례 폐지를 줄기차게 경고했다. 9월에는 10만명의 서명을 받아 도에 제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때마침 안희정의 성 추문은 보수 야당에겐 호재였다. "도덕적 흠결이 있는 도지사가 만든 인권조례의 진정성을 믿을 수 없다"는 게 요지다. '올드 보이' 이인제도 서둘러 인권조례안 폐지에 찬성하고 나섰다. 그럴 듯한 명분을 부여받은 자유한국당과 종교단체의 야합이 이뤄지는 중이다. 성 소수자를 매개로 정치인과 압력단체가 표를 사고 파는 것이다. 장사치가 따로 없다.
"정치란 무엇입니까?" 춘추시대 계강자가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가 답했다. "정치란 올바름(正)입니다. 공께서 올바르게 이끌면 누가 감히 올바르지 않겠습니까?" 정치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나는 정치인을 믿지 않는다.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다. 정치인의 잘못이다. 인간세계가 약육강식이 판치는 정글과 다를 바 없다지만, 그래서 정치판의 더러운 행태를 그러려니 해야 할까. 권모술수가 판치는 양아치 같은 짓거리가 '정치공학'이라는 세련된 용어로 포장되는 세상이다. 정의와 올바름? 코미디 같은 얘기다.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발의해 제정한 인권조례를 표를 얻기 위해 스스로 폐지하는 사람들 아니던가. 세상에 못 믿을 게 정치인이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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