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문의 그늘 |
시집 『파문의 그늘』 (시인동네 시인선 090)이 바로 그것이다. 무엇보다 시집에는 빈곤의 서정을 돌파하는 내적 힘이 왕성하여 읽는 이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긴다.
빈곤하고 지쳐 있는 이 서정성은 결코 안락함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주체가 되어 시인과 시 세계를 고민하게 만든다. 이번 시집은 그 고민의 흔적에서 태어난 귀중한 66편의 시가 실려 있다.
"이 집 저 집 문을 두드리고 돌아다녔다"( 「장마」 ) 고 말하는 시인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꽤 다양한 공간을 시적(詩的)으로 누볐음을 알 수 있다. 시인이 만든 이 방점을 모으자, 결국 시인이 치열하게 지키고 싶었던 것, 궁핍해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에 대한 몰입을 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가끔 허망해질 수 있다는 예감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시인은 눈꽃을 피우거나 주검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희망으로 튼튼한 울타리를 만들어 낸다. 시인은 이 희망과 허망함 그 착란의 사이에서 비로소 '파문'을 일으키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그가 말하는 '파문의 그늘'은 힘의 근원에서 시작된 '파문으로서의 삶'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삶이란 '힘의 분출'이라는 생각이 이번 시집을 지탱하는 견고한 기둥이다. 이 시집은 일종의 "더 힘차게 살아가겠다는 / 다짐 같은 것 "( 「여울」 ) 이며 동시에 그런 다짐을 나누고 싶은 시인의 온도다. 그만의 독특한 서정이 독자들에게 진한 감동으로 다가설 것이다. 오석륜 시인은 2009년 《문학나무》로 등단했다.
우창희 기자 jdnews00@
<책 속에서>
눈물은
서로에게 번지다가
또 퍼지다가
마침내 식구들의 얼굴에
같은 모양의 파문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파문」 중에서
지금 저 기차처럼 우리들도 어디론가 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기차의 속도를 헤아리고
기차 소리 하얗게 닦아내며
서로의 몸을 섞고 있던 눈송이들도
스크린 밖으로도 뛰쳐나와
영화관은 온통 눈발로 흩날리지만
내 손에는 여전히
그대의 손은 없고 눈송이만 소복소복 쌓이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끊어진 기차 소리는 더 이상 이어지지를 않고
-「귓속말의 정체」 중에서
얘들아,
이제는 편히 쉬자,
우리들끼리 얼굴도 익히고 같이 놀자,
-「빗줄기는 원의 생각을 품고 있다」 중에서
<작가 약력>
충북 단양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했다. 시인이며 번역문학가, 칼럼니스트. 동국대학교 일어일문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문학박사(일본 근현대문학 전공). 2009년 『문학나무』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저서 및 역서로, 『일본어 번역 실무 연습』 『일본 하이쿠 선집』 『풀 베개』 『미디어 문화와 상호 이미지 형성』(일본어판, 공저) 『일본단편소설 걸작선』 『미요시 다쓰지 시선집』 『한국사람 다치하라 세이슈』 등 30여권을 출간했다. 동국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으며, 현대인재개발원 주임교수를 거쳐, 현재는 인덕대학교 비즈니스일본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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