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인터넷 캡쳐 |
장형사 역시 같은 소수민족이면서도 몹시 놀라는 눈치였다. 장형사는 처음 십 여 일간 무척 스트레스를 안겨 주었다. 사람을 만나거나 대화를 나누면 꼭 붙어 서서 눈에 불을 켜듯 하니까 소수민족들이 오히려 경계를 하고 나섰다. 다시 말해 그의 신분을 알고 있는 주민들로서는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나에 대해서도 겉으로는 밝게 웃는 표정이지만 심지어 화장실에 앉아 있어도 저만치 앞에서 내 동태를 주시하고 있을 만큼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마치 내가 소수민족 취재를 핑계로 침입한 불순세력이라도 되는 양 착각하게 만드는 그의 소행이 괘씸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코 그의 충실한 경찰근무 자세를 갖고 왈가왈부 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꾹꾹 참자니 어떤 때는 짜증이 나기도 했다.
대대로 농사를 주업으로 살아 온 걸라오족이다.그러나 당(唐)나라 시대 당시부터 대대로 황실의 최고 실력자들 가운데 이들 걸라오족이 상당수 있었다는 자랑을 촌부들은 잊지 않는다. 이는 ??族이 무척 총명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역사 기록 가운데는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미움을 사서 '걸라오족 전멸계획'이란 어처구니 없는 정책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베고 찌르며 걸라오족 말살 작업에 나섰던 오욕의 역사는 취재만 했지 옮겨 놓을 수 없는 상황을 독자들은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산 속으로, 고지대로 생명을 지키기 위해 도망 다니던 걸라오족의 슬픈 역사가 마음 아플 뿐이다. 어떤 집은 아직도 담벼락에 듬성듬성 구멍이 남아있는데, 이것은 공격해오는 상대방을 화살로 막아보기 위한 최후의 진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文字는 없지만 고유한 언어를 갖고 있는 걸러우족들이다. 芦笙이라 부르는 고유악기를 갖고 있어 악기를 불며 춤을 추는 芦笙舞를 발전시켜 왔다.
소학교 남자아이가 되면 누구나 이 芦笙를 익히기 시작하고 점차 자라면서 덩실덩실 춤추기를 곁들이는데 어딘지 모르게 슬픈 가락을 띠고 있는 芦笙소리가 듣는 이의 마음을 착잡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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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상에는 43만 여명이나 된다는 걸라오족. 그러나 이들은 한 곳에 모여 살지 않고 지금은 여러 지방에 흩어져 있다.
주업은 농업이다. 한이 많은 민족답게 그들만의 문학작품과 미술 음악 등의 예술작품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어 정서적으로 풍요한 마음의 소유자들이기도 하다.
필자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 이들 고유의 芦笙舞와 사자춤 등을 볼 기회가 있었다. 연출하는 이나 관객 모두가 혼연일체가 되어 음악과 춤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한순간에 표현하려는 예술애호가들에게 美의 극치를 느끼게 했다.
고유문자는 갖고 있지 않지만 민족 언어는 갖고 있다. 한족이나 다른 소수민족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자기들만의 언어. 어찌해서 문자는 없는 것일까 하고 무척 궁금했다. (이 문제는 훗날 중산대학교 소수민족 연구 전문가로부터 해답을 듣게 되었지만 이것 역시 이 지면에선 밝히기가 어렵다.)
중국의 일반적인 춘절(구정)은 음력 1월 1일이다. 그러나 소수민족들의 춘절(春節)은 저마다 다 틀리다. 걸라오족 역시 음력 3월 3일이 春節로서 일년 중 가장 큰 명절로 친다. 이 시기는 자연에 온기가 느껴지면서 모든 식물의 씨가 잎을 키우게 되는 때라고 믿는다. 이날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새벽부터 전통복장 차림을 하고 아침 식사가 끝나는 대로 조상의 묘를 찾는다. 조상의 묘 앞에 평상을 차리고 준비해온 음식을 올려놓은 다음 조상신에게 일 년 동안 가정의 평안과 가족들의 건강, 그리고 풍년을 위해 기원한다. 걸라오족들이 숭배하는 신은 다양하다. 그러나 조상신 만큼은 영원불변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또 신봉한다.
조상의 묘 앞에서 기원을 마치면 이곳 저곳에서 폭죽 터뜨리는 소리로 산과 들이 진동할 정도다.
이들은 이 소리가 바로 新年을 여는 소리라고 믿으며 소리가 클수록 힘찬 새해를 여는 것이라고 여긴다. 부락의 가장 넓은 마당으로 한 집 두 집 가족들이 모여들고 이들 특유의 사자춤놀이와 芦笙舞가 등장한다. 미리 준비된 각종 체육대회가 열린다. 오후에는 부락에서 가장 덕망 높은 어른이 다섯 마리의 암탉을 메고 나타나 그 자리에서 닭의 목을 딴다. 닭의 생피는 미리 마련된 제단 주변에 뿌려지고 부락민들의 함성은 절정에 이른다. 족장부터 시작해서 남자들이 차례로 제단에 절을 하는 시간이 있다. 이 역시 부락의 안녕과 풍년을 위해 조상신에게 기원하는 모습이다.
이 순서가 끝나면 모두들 주변의 가장 높은 산으로 향한다. 그리고 산신령에게 부락의 평안과 부락민들의 안녕 및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올림으로써 春節 행사를 마무리 한다.
#사랑이 싹트는 춘절(春節)
시대가 바뀌고 모든 문물이 현대화 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들의 春節 풍속만은 변하지 않고 있다. 객지에 나가있던 사람들도 春節에는 모두 돌아와 가족 친척 부락민들과 며칠에 걸쳐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흔히 얘기하는 <나눔의 공동체>는 바로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어느 집에서나 음식을 나누고 술과 고기를 나누며 빈부의 구별 없이 노소동락 하는 모습은 천국이 따로 없는 듯싶다.
청춘 남녀들의 사랑도 무르익는 계절이 또 春節이다. 평소에는 내외를 하다가도 (이곳 처녀들은 평소에 유난히 수줍음을 많이 탄다.) 春節 기간만큼은 남녀가 같이 어울려 다니며 그들만의 즐거운 시간을 만든다.
들녘에서 또는 산 그늘 밑에서 아니면 뒷담 기슭이나 헛간에서 남녀가 밀담을 나누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고, 누구든 이런 모습에 놀라거나 기이하게 생각지 않는 눈치다.
청춘 남녀들이 이 기간을 놓치면 다시 붙잡기 힘들다는 묵계라도 되어있는 듯 春節 기간에는 청춘의 불꽃이 타오르는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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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라오족에겐 '꿔니우왕지에'(?牛王?)란 명절이 또 하나 있다. 음력 10월 초 하룻날로, 농사일의 주인공인 소를 공경하며 하루를 보낸다. 일년 열 두 달 부려먹기만 하는 소에 대해 인간이 베풀 수 있는 최대의 고마움을 표시하는 날로서 무척 큰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아 이채로웠다.
이 날은 모든 농사일을 무조건 쉰다. 휴식인 것이다.
따라서 집에 부리던 소도 이 날 하루는 자유다. 뿐만 아니라 소가 좋아하는 가장 좋은 사료를 배불리 먹이며 잔등을 토닥여 주기도 하고 사람에게 말을 걸 듯 그동안 수고했다며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흰색과 청색을 유난히 좋아하는 걸라오족들이다. 명절 복장으로 이 두 색깔의 옷들을 많이 입는데 '꿔니우왕지에'에는 소 잔등에도 흰천과 청색 천을 등에 매어주며 기쁨을 나눈다.
민족신앙이 대부분 그러하듯 이들의 신앙관 역시 삼라만상 모든 대상이 신앙물이다.
그래서 더욱 순박한 민족성을 갖고 있다. 다른 민족에게 짓밟히고 착취당했던 서러운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이 모든 것을 숙명으로 알고 받아드리는 이들 걸라오족.
그런가 하면 재난을 피하기 위해 습관화된 몸가짐과 빠른 눈치가 배어 있다. 스스로 몸을 낮추면서 쉽사리 자신의 속내를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변해버린 어진 백성들이 곧 걸라오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끝>
그동안 애독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중국 소수민족 취재 탐방기는 오늘로서 1차분이 끝났습니다. 최근에 '중국소수민족 취재탐방기'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김인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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