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들이 고개를 내밀고 꽃들이 꽃망울을 튼다.
요즘 전국의 꽃들이 한꺼번에 핀다. 남쪽부터라는 개념이 없어져 버린 것 같다. 촉촉이 내린 봄비는 싹들의 세상 구경을 응원하고, 따스한 햇살은 꽃봉오리의 삶을 보듬어준다. "와~ " 탄성을 지르며 세상 밖으로 한꺼번에 나온 그것들을 보고 있으면 기쁘다. 나를 보며 신기해하는 그것들이 예쁘다. 사랑스럽다.
보고 있으면 기쁘고 예쁘고 즐겁고 행복한 것은 좋아하는 것일까? 사랑하는 것일까?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과의 차이는 있다. 좋아하는 마음의 주인은 나, 사랑하는 마음의 주인은 상대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에는 희생과 봉사가 없지만 사랑하는 것에는 희생과 봉사가 따른다. 사랑하면 내가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보다 상대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내려놓고 포기하는 횟수가 많아진다. 어쩌면 전부를 포기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죽음의 순간이 닥쳤을 때, 영화 타이타닉에서처럼 구명보트를 상대에게 먼저 태우는 것, 교통사고가 나는 순간에 상대를 살리려고 핸들을 확 돌리는 경우가 그렇다. 좋아하는 건 내가 그 사람을 포기 했을 때 잃어버릴 것은 상대 하나 뿐인데,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과 헤어졌을 때 내가 잃어버릴 것은 상대를 뺀 나머지 모든 것이다. 그래서 어떤 심리학자는 감히 사랑한다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고 했다.
전 세계에 진정한 사랑을 들려준 동화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야기를 상기해보자.
"옛날에 한 그루 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에게는 사랑하는 소년이 있었고. 소년은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가며, 매달려 놀고 그네도 타며, 사과도 따 먹고 숨바꼭질도 하며 잘 놀았다. 나무는 행복했다. 소년은 피곤해지면 나무 그늘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고, 세월이 흘러서 소년은 물건 살돈이 필요해서 사과를 따서 가져간다. 그래도 나무는 행복했다. 그 후 많은 세월이 흘러 소년은 나뭇가지를 베어서 집을 짓는다. 또 시간이 지나 소년은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어서 타고 멀리 떠난다. 그래도 나무는 행복하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 소년이 다시 돌아오는데 나무는 안간힘을 다해서 굽은 몸뚱이를 펴서 밑동을 내놓는다. 소년이 지친 몸을 쉬는 것을 보고 나무는 행복하다."
초등학교 저 학년 때는 이해가 어려웠다. 양가감정 때문이었다.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양면이 한 번에 몰려왔기 때문. 나무를 보면 행복한데 소년을 보면 행복하지 않았고, 어떤 때는 소년을 보면 행복했고 나무를 보면 슬펐다. 끝도 없는 부모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는 사랑은 쉽지 않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이 동화의 명대사가 있다. "너에게 더 줄게 있으면 좋겠는데, 내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 늙어 버린 나무 밑동밖에 안 남았어. 미안해."
누군가에게 다 주고도 미안하다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랑한다면서 시기하고 질투하고 자신에게 맞추기를 바라고 투사하고, 합리화하고……. 그런 사람들이 상담실을 찾아왔을 때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를 적어놓은 글을 소리 내어 읽게 한다. 한참 읽다가 내담자는 자신이 사랑하지 않았음을 인정하며 화나 분노 등을 가라안치고 미소를 짓는다. 그래서 사랑한다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이유다. 다 주고도 줄 것이 없어 미안하다는 마음이 있어야 사랑이다. 목숨을 내 놓을 수 있어야 사랑이다. '고객님 사랑합니다.' 는 영혼 없는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이랬으면 좋겠고 저랬으면 좋겠고, 이렇게 해 주기를 원하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내 안에서 규정을 짓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상대의 모든 것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고, 나는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어야 한다.
새싹이 피어나는 생명의 봄에는 응원하고 보듬어주어라, 아낌없이 사랑하라.
김종진 한국지문심리상담협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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