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인터넷 캡쳐 |
일반 호텔방 보다 두 배 정도나 큰 방인데 낡아서 엉망이다. 샤워를 하려고 수도 꼭지를 트니까 빨간색 녹물이 콸콸 쏟아져 내린다.
5분 쯤 뽑아내고 나서야 깨끗한 물을 쓸 수가 있었다. 수건 역시 깨끗하긴 한데 두어 군데 찢어진 채다.
피곤했는데도 이튿날은 깨어보니 새벽 5시다. 반바지 차림으로 새벽 산책길에 나섰다.
처음 보는 도시의 모습도 구경할 겸 이 골목 저 골목 어슬렁거리다가 곳곳에서 영업중인 더우짱(콩국물)과 유티아오(기름과자), 차이빠오즈(채소를 넣은 만두)로 아침요기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귀를 의심할 만큼 값이 싸다. 콩죽 한 그릇, 기름과자 두 개, 채소만두 두 개가 도합 1元이라니 놀랄 정도로 싼 가격이다.
이 정도면 아침 한끼는 너끈하다. 맛있게 아침식사를 하고 도시를 한 바퀴 돈 다음 호텔에 돌아왔다. 시계를 보니 오전 7시 40분. 아무 생각 없이 3층 숙소로 올라가려는데 누군가가 부르기에 돌아보았다.
로비 한 쪽에 있는 휴식용 소파에 외사과 황과장, 뚱보아저씨, 그리고 또 한 명의 사나이가 앉아있다가 반기며 다가온다.
새벽부터 어디를 갔다 오냐기에 산책을 하고 오는 길이라고 하니까, 아침 식사를 같이 하기 위해 벌써부터 와서 기다리는 중이란다.
(쯧쯧! 이런 친구들 보았나. 그럴 생각이면 어젯밤에 진작 얘기해 줄 것이지.)
그렇다고 쉽게 이미 밥을 먹었노라는 말이 나오질 않아 멈칫거리고 있으려니 그들은 어서 가서 옷만 갈아입고 나오라며 재촉이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하는 심정으로 뛰어올라가 겉옷만 바꿔 입고 내려왔다.
어젯밤의 그 승용차가 밖에 대기하고 있다가 우리 일행을 태우고 출발했는데 역시 2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를 승용차로 움직이려는 그들의 마음이 헤아리기 어렵다.
중국은 어느 도시에나 식당 문을 일찍 여는 곳이 없다. 광주나 심천 같은 대 도시 호텔의 경우 아침 7시에 문을 열고 간단한 아침요기를 하게 하는 곳은 더러 보았었다.
이곳 역시 호텔 2층의 레스토랑으로 가니까 큰 홀이었는데 이미 절반 이상 자리가 차 있었다. 가운데는 홀이고 빙 둘러 룸으로 되어 있었는데 우리들은 그 중 한 방으로 들어갔다. 이미 예약이 되어 있었는지 두 명의 꾸냥이 예쁜 웃음을 날리며 날렵하게 찻잔을 채워준다.
두 아가씨의 전통복장이 하도 예뻐 눈길을 자주 주니까, 뚱보 아저씨 왈, 지금 저 아이들의 복장이 걸라오족 전통복장이라고 귀띔을 한다.
아침 음식으로는 너무 푸짐했다. 이미 아침식사를 했는데도 꾸역꾸역 집어 넣게 된다. 식사 도중 뚱보아저씨가 오늘 아침 내가 갈 지방의 촌장에게 전화를 해 놓겠으니 안심하고 출발해도 좋다고 한다. 게다가 3시간 거리의 그곳까지 자기 승용차를 빌려주겠다고까지 하니 이렇게 고마울 데가 있나! 나는 연신 하오! 하오! 쎄쎄! 만을 연발했을 뿐이다.
이어서 황과장은 같이 온 젊은 친구를 소개하며 외사과 형사인데 내가 그곳에서 취재기간 동안 동행, 신변을 보호해 줄 것이니까 걱정 말라는 얘기다.(앗차! 또 이런 일에 부닥치는구나.)
벌써 여러 번 같은 경우를 겪었다. 외국인이기에 신분을 보호해야 한다며 형사를 동행시키는 곳이 대부분으로서 극구 사양하며 이를 물리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거듭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굳이 형사가 대동하지 않아도 농촌에 위험요소는 없으니 나 혼자 다녀오도록 해달라고 부탁 반 사정 반 청원을 해 보았다.
#촌장집에 도착하다
황과장의 눈빛은 단호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를 찾아 온 외국인에게 그럴 수는 없다는 얘기로 딱 잘라버린다. 이쯤 되면 별 수 없다. 수긍하는 수 밖에. 물론 신변보호가 명분이지만 나를 제대로 감시하겠다는 저들의 저의를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외사과장의 주문이 이어진다. 다른 곳도 많이 다녔다니 알 터이지만 좋은 것만 취재대상으로 삼기 바란다. 어느 나라 어느 국민들에게나 똑같이 어려운 일은 산재해 있는 것 아니냐.
중국, 그것도 소수민족들에겐 우리들이 보여주기 싫은 부분도 없잖아 있다. 그러니 작가선생께서 이해해주기 바라며, 사진 찍는 것도 부정적인 부분은 삼가해 주었으면 한다. 이런 투의 얘기였다.
잘 알겠다고 대답하고 언제 출발하면 좋겠냐고 물으니까 식사 후 호텔에 가서 짐 챙기고 언제라도 출발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호텔비는 원래 1박에 280元인데 80元으로 조절해 놓았으니 그것만 지불하면 될 것이라는 친절까지 보인다. 쎄쎄! 물론 공짜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류의 도시는 어디엘 가도 나 혼자서 깎고 깎으면 가능한 금액이었었다.
준비를 마치고 (굳이 준비할 것도 없지만) 장형사와 승용차에 동승, 걸러우족 촌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찌는 듯한 더위가 시작된다.
승용차는 에어컨 고장이라 문마다 활짝 열고 후덥지근한 공기와 먼지를 섞어 마시며 달리고 또 달렸다. 5분쯤 도심지를 달린 후에는 계속 흙먼지길, 털털거리는 시골길이다.
장형사에게 넌즛이 유혹을 했다. 내가 가면 30일 이상 걸리는데 시간 낭비할 필요 있느냐. 내가 눈감아 줄 터이니 집에 가서 쉬면 어떠냐. 절대로 입 조심할 터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는 묵묵부답 웃기만 한다. 허허벌판 같은 길을 세 시간이나 달린 후에 차가 한 마을 길로 접어든다.
흙벽돌 2층집 앞에 우리를 내려놓고 승용차는 온 길을 되돌아가고 40대 촌장 부부가 반갑게 우리를 맞이해 준다.
성씨가 씨에(?)라는 희귀한 성(후에 알고 보니 많은 숫자다.)을 가진 촌장은 흑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새까맣게 그슬린 얼굴에 흰 이만 반짝이는 전형적인 촌부였다.
이미 전화를 받고 알고 있었다면서 2층으로 안내를 한다.
방은 없고 커다란 홀뿐인 2층에는 구석에 세 개의 나무침대가 보이고 한 곳만 모기장이 쳐 있는데 숭숭 구멍이 뚫린 것이 모기장은 있으나 마나 할 것만 같다. 그래도 그곳을 가리키며 날 더러 쓰라고 한다. 날씨가 너무 더워 장형사와 나는 집 뒤 쪽의 냇가로 나가 등목을 했다.
점심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는데 장소는 1층 거실이었다. 말이 거실이지 헛간 같은 곳으로 먼지가 이는 흙바닥이 하도 오래되어 반질반질 했다.
문간에서 한 꼬마녀석이 빤히 바라보고 섰는데 고추만 겨우 가린 너덜너덜한 팬츠 차림이고 상의는 벗은 채다. 녀석 역시 태양에 그슬릴 대로 그슬린 것이 흑인의 사촌이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나니 내 손바닥이 끈적끈적해진다. 앉은뱅이 밥상이 있고 빙 둘러 의자가 놓였는데 어찌나 낮고 작은지 마치 유치원생들의 식탁 같다.
촌장 부부와 조금 전에 문간에서 만났던 아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똑같이 생긴 녀석이 또 한 명 들어와 옆에 앉는 것이 아닌가. 쌍둥이였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입이 무거운 장형사도 두 녀석을 번갈아 바라보며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일은 바로 후에 터져 나왔다.
사진=인터넷 캡쳐 |
쌍둥이 녀석들의 누나 역시 쌍둥이였기 때문이다.(나중에 알았지만 중학교 2학년 중퇴로 16세라고 했다.) 말이 16세지 다 큰 처녀들이다. 소수민족 처녀들의 공통적인 것이 하나같이 조숙하다는 점이었다. 중국의 법적 결혼연령은 21세라고 하지만 소수민족들 대부분이 16세~17세면 시집을 가고 있었다. 육류를 많이 먹고 일을 많이 하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20대 처녀처럼 숙성해 있는 모습들이다.
저녁을 먹기 위해 가족들이 빙 둘러 모이게 되면서 아들 쌍둥이를 발견했었는데, 잠시 후 보니 녀석들의 누나들 역시 쌍둥이였다는 얘기다. 아니, 이럴 수가! 그렇다면 저 왜소해 보이는 촌장부인이 내리닫이로 쌍둥이를 거푸 낳았다는 얘기가 아닌가.
장형사와 나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눈을 의심했다. 뒤늦게 우리들의 놀라는 표정을 보며 촌장은 미소를 흘렸고, 그의 부인은 수줍어하는 눈치다. 참으로 재밌는 집에 오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날 밤은 너무 피곤해 정신 없이 골아 떨어졌는데도 너무 시끄러워 잠을 깨고 보니 옆 침대의 장형사가 이빨을 갈아대는 소리가 바로 그 주범이었다.
잠을 깨고 보니 그의 이빨 가는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리며 내 신경을 있는 대로 긁어댔다. 게다가 숭숭 뚫린 모기장 구멍 사이로 왕 모기들이 드나들며 내 온 몸뚱어리를 공격해 댄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가 조금 지나고 있었다. 더 이상 누워있기가 힘들다. 슬그머니 일어나 침상 머리맡에 두었던 손전등을 찾았다.
불을 켜고 장형사를 비췄다. 그는 팬티 바람으로 아무것도 덥지 않은 채 이빨 가는 일에 열중이다. 저 친구에겐 모기도 물지 않는가. 벌거벗은 건장한 체구가 부럽다. 39세라고 했으니까 사나이로서는 농익을 때다. 밑으로 내려가려고 발을 옮겨 놓을 때마다 마루바닥에서는 삐꺼덕 삐꺼덕 소리가 요란하다. 고요한 한밤중이다 보니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릴 수 밖에 없을 터. 공연히 조심스러워 진다.
아래층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밖으로 나가는 문도 잠겨있지 않은 채다. 밖으로 나오니 밤공기가 제법 상큼하다. 손전등을 이러 저리 비추다가 마당 한 쪽에 사람들이 누워있는 게 보인다. 자세히 보려니까 촌장과 쌍둥이 두 아들이 나란히 누워 곤한 잠을 자고 있다. 2층을 손님들에게 양보하고 마치 쫓겨 난 사람들 같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들을 피해 밖으로 나와 마을 골목길을 접어 들었다.
옛 우리네 농촌처럼 돌담길이다. 어떤 집은 돌담의 높이가 어른 키보다 높은 집도 있다. 한 집에서 개가 짖기 시작하니까 이곳 저곳에서 응원이라도 하듯 개들이 짖어댄다. 한밤 중 낯선 나그네가 수상쩍었던 모양이다.
몇 채 안되는 마을을 벗어나니 밭들이 있고 졸졸졸 개울물을 따라 논둑길이 이어진다. 아무 생각 없이 걷고 또 걷다 보니 차들이 다닐 수 있을 만한 넓직한 자갈길. 마치 유령에라도 홀린 듯 길을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풍요로운 민물고기 요리
너무 멀리 왔구나 싶어 발길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촌장과 쌍둥이 두 아들이 물통 하나씩을 들고 어디론가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일찍부터 어디를 가냐고 물으니 따라와 보라며 앞장을 선다. 그들이 당도한 곳은 집에서 500m정도 거리에 있는 작은 연못이었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풍덩 풍덩 물 속에 뛰어든다. 새벽부터 왠 수영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언제 쳐 놓았는지 긴 그물이 눈에 띄었다. 그물 한쪽에서부터 물가 쪽으로 끌고 오는데 이미 상당량의 고기들이 펄떡이고 있었다. 막 떠오르는 햇살에 비추이는 고깃비늘이 영롱한 빛으로 반짝이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낸다. 그들의 손동작은 빨랐다. 대충 보아 작은 고기들은 다시 호수로 던지고 큰 것들만 물통에 던지는데 삽시간에 통 두 개가 고기들로 가득 찼다.
고기를 빼 낸 그물은 다시 호숫가에 둘러쳐진다. 나까지 합쳐 네 명이 낑낑 대며 고기 통을 집으로 날랐다.
촌장은 몇 개의 대야를 죽 늘어 놓더니 잡아 온 고기를 나누어 담는다. 쌍둥이 두 녀석은 한 대야씩을 들고 마을로 치닫는다. 그리고는 잠시 후에 다시 돌아와 아버지가 담아주는 고기를 들고 또 뛰고 뛰기를 서너 차례씩 마치고는 빙 둘러 앉아 고기 창자를 빼는 등 요리준비를 한다. 쌍둥이의 작업은 이웃집에 잡은 고기를 나눠주는 일이었다. 어느새 촌장부인과 두 딸도 나와 아침 준비를 서두르는 모습이다. 참으로 부지런한 소수민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다녀 본 소수민족들 대부분이 바닷가에 사는 찡족(京族)을 제외하고 오전 9시가 넘어서야 일어났으며, 10시쯤이 되어야 아침 식사를 하는데 비해 이들은 전혀 달랐다.
엊저녁에 푸짐하게 먹었던 민물고기 요리에 대한 궁금증도 풀렸다. 호수에서 잡아 올린 고기는 판매용이 아니라 9집의 공동 어장으로서 촌장에게만 그물을 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호수를 6등분 하여 9집 또는 10집이 공동으로 그물 한 개씩을 갖고 있다고 했다. 고기는 먹을 만큼만 잡되 씨받이는 반드시 놓아준다는 묵계가 철저히 지켜진다고 한다.
오랜 세월 민물고기를 주요리로 삼다 보니 요리방법도 다양했다. 아침식탁의 경우, 새벽에 잡아 올린 고기들로 풍성했는데 찜이 있는가 하면 어탕에 구이까지 곁들여 그야말로 민물요리 전문식당을 방불케 했다.
<다음주에 계속>
김인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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