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터널, 추억의 판타지와 이별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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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의 시네레터] 터널, 추억의 판타지와 이별의 현실

-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 승인 2018-04-04 09:12
  • 현옥란 기자현옥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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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 오래된 터널이 있습니다. 기억 저편 과거로 향한 문이거나, 혹은 의식 깊이 숨은 무의식으로 이어지는 통로입니다. 기차가 다니지 않는 폐선로 역시 현재와는 떨어진 추억의 시간을 드러냅니다. 그 어둑한 끝자락에 한 여자가 앉아 있습니다.

구름나라에서 내려다보던 엄마가 비와 함께 내려옵니다. 그런데 기억을 잃었습니다. 남아서 기다리던 아이와 아빠가 그녀의 기억을 찾아줍니다. 그러니 영화는 돌아온 엄마 이야기이면서 한편으로 잊었거나 잃었던 옛 사랑의 시간을 되찾은 여자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기억을 잃고 돌아온 엄마를 아이와 아빠는 아무 일 없었던 듯 대합니다. 또 어떻게 만나서 사랑하고 결혼하게 됐는지 옛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서먹해 하는 그녀와의 거리를 좁힙니다. 완전체 가족이 된 그들은 행복한 나날을 보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기억을 되찾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엄마는 되돌아갑니다. 비가 그쳤으니 구름나라로 올라갑니다. 가기 전 그녀는 남편에게 편지를 씁니다. 처음 알게 되고부터 오래도록 얼마나 사랑했고, 기다렸고, 그리워했는지에 대해 말합니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서는 스무 살까지의 생일 케이크를 제과점 친구에게 미리 부탁합니다. 편지도 함께 써서. 이제 그녀는 떠납니다. 내년에 다시 만나게 될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리움만 남습니다.

영화는 판타지와 실제의 경계가 모호합니다. 마치 동화와 같습니다. 구름이 비가 되고, 다시 구름이 되듯 순환적인 세계가 있는가 하면, 터널을 통과하는 선로처럼 직선적인 시간도 존재합니다. 이 순환의 판타지와 불가역의 직선적 현실이 마주치는 곳이 바로 숲속 터널입니다. 우리들 역시 종종 이런 터널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더러 불쑥 나타난 추억과 마주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때로 행복하고, 또 때론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과거엔 모두 행복했었던가요? 영화는 수아와 우진의 옛 사랑에도 가슴 저미는 아픔의 시간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결별과 상실 후의 회한이 옛 사랑을 아름답게 추억하도록 할 따름인지도 모릅니다. 오랜만에 멜로 영화로 돌아온 손예진과 그녀의 남편 역을 맡은 소지섭은 뜨거우면서도 넘치지 않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보통 가을을 멜로의 계절이라 하지만 이 영화는 봄날에도 가슴을 촉촉하게 적십니다. 때마침 영화에서처럼 비가 내립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김대중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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