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대 이전 지식인들도 영원한 것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번민했으며, 바로 그 어둠 속에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빛을 찾아내어 죽음으로부터 살아 돌아왔다. 슬픔이 저며 오기도 했지만, 음울함 속에서 죽어 가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선인들이 자기의 죽음을 예상하면서 쓴 묘비와 묘지에는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것들이 담겨 있다.'- 책을 엮으며 중에서
"죽음에 대처하기 어렵다.(處死者難)" 사마천 『사기』의 말이다.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거나, 그 앞에 담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오히려 그럼으로써 죽음은 무의식에서 나를 잡아 당기며 뒤를 돌아보게 한다. 의식이 사라지기 전 자신의 '존재의 무화(無化)를 극복'하고 싶었던 동양의 현자들은 자신의 묘비명을 직접 쓰며 삶의 가치를 다시 확인하고는 했다.
그런 옛사람들의 자찬묘비(自撰墓碑) 58편을 한문학자 심경호 교수가 책 『내면기행』에 담았다. 2009년 '내면기행-선인들, 스스로 묘비명을 쓰다'의 개정판인 이 책은 58인의 자찬묘비를 생년 기준 연대순으로 배치해 역사적 흐름에 따라 가졌을 마음가짐까지 읽어 볼 수 있게 한다.
"시름 가운데 즐거움 있고, 즐거움 속에 시름 있도다"라고 했던 이황, "살아서는 벼슬 없고 죽어서는 이름 없으니 혼일 뿐. 근심과 즐거움 다하고 모욕과 칭송도 없어지고 남은 것은 흙뿐"이라는 이홍준, 열여덟에 생을 마치며 "뜻은 원대하지만 명이 짧으니 운명이로다!"라고 적은 금각. 다양한 시대 속, 옛 사람들의 죽음과 삶을 읽으며 나의 삶을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박새롬 기자 onoino@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